‘국군포로 가족 북송’ 커지는 의혹

  • 입력 2007년 1월 23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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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딸 “中, 한국과 송환 협의… 신분 알고도 체포”

민박집 주인 “中공안, 투숙사실 알고 있는 듯 했다”

한국 정부 “탈북자 일제 단속때 우발적 검거 북송”

지난해 10월 중국 선양(瀋陽) 한국총영사관의 보호를 받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된 국군포로 가족이 체포되기 전 인근에 머물고 있던 다른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피신하라’고 알린 것으로 드러났다.

30여 년 전 북한에서 수용소에 끌려간 뒤 생사를 알 수 없는 국군포로 김우열(76) 씨의 딸 김모 씨는 2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 11일 오전 11시경 선양의 총영사관에 어머니 등 탈북한 가족 4명을 인계하고 2, 3시간 뒤 이들 중 언니로부터 ‘피신하라’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당시 통화에서 언니가 ‘진술서에 내용을 잘못 써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너도 위험할 수 있으니 빨리 피신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또 “지난해 10월 8일 한국 정부가 전화로 ‘중국 정부와 협의가 끝났으며 중국 공안이 조사를 하겠다고 했다’고 말해 같은 달 11일 가족들을 직접 영사관 측에 넘겼다”고 말했다. 이들 가족이 공안에 체포된 시점은 11일 오후 4시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몇 년 전 먼저 탈북했으나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의 추가 탈북과 한국행을 돕기 위해 당시 중국에 머물고 있었다.

김 씨는 언니의 전화를 받은 직후 은신처에 몸을 숨겼다가 총영사관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북한의 보복 등을 우려해 이름과 나이, 북송된 가족의 자세한 인적사항 등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김 씨의 어머니 백복순(70) 씨는 강제 북송된 뒤 북한 보위부의 조사를 받다 12월 3일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주장대로라면 한국 정부는 국군포로 가족들이 체포되기 며칠 전 이미 중국 정부와 이들의 송환 문제를 협의했고, 중국 공안은 민박집에 머물고 있던 이들 가족의 존재를 알고 체포해 북송시킨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군포로 가족들의 신원은 사전에 중국에 통보됐지만 본격적인 협상은 11일 이뤄졌다”며 이를 부인했다. 정부는 중국 공안이 국군포로 가족의 신원을 모르는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11일 미국의 선양 총영사관 탈북자 진입에 따라 탈북자 일제단속을 실시하여 이들을 우발적으로 체포해 북송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머물던 민박집 주인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공안이 국군포로 가족들이 투숙한 지 1시간 만에 찾아와 ‘북조선 사람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등 이들의 신원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당시 일제검문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중국 정부가 이들의 신원을 모르고 체포해 실수로 북송했다는 설명은 그간의 전례를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는 이들의 북송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밝히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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