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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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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이던 사법연수원 시절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재들과 한 강의실에서 공부도 하고, 수업이 끝나면 막걸리를 마시며 인생과 세상을 논하던 새로운 세계였다.
2003년 8월 사시 동기인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에서 같이 공부할 때 나중에 대법관이나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대부분 알았다”고 치켜세웠다. 또 “내가 예상 밖으로 (대통령이) 돼서 여러 사람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세상엔 예상대로 되는 일과 예상 밖으로 되는 일이 있다”고 말해 당시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이때만 해도 두 사법시험 동기는 승승장구하는 상황이었다. 고법 부장판사에서 최초의 여성 헌재 재판관으로 발탁된 전 전 재판관에게 많은 찬사와 격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역시 세상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전 전 재판관을 헌재 소장으로 지명하면서 두 시험 동기는 103일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제 한 사람은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하는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한 사람은 29년간 판사로 쌓아온 명예를 일순간에 날려버리게 됐다.
경위가 어떠했든 전 전 재판관이 결단을 내리면서 ‘헌재를 위해서’라고 밝힌 것은 정확한 얘기다. 설령 그가 국회 표결을 통과해 헌재 소장 자리에 올랐더라도 지금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예견되고 있었다.
순전한 가상이지만, 당장 야당은 ‘전효숙 헌재 소장’의 자격을 문제 삼는 헌법소원을 헌재에 냈을 것이다. 그리고 헌재 재판관 9명 중에서 두세 명은 위헌 주장에 동의했을 것이다.
결론은 위헌이 아니라고 내려질지라도 ‘전 소장을 수장(首長)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관과 그 대상이 된 헌재 소장이 과연 동거할 수 있을까. 18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헌재가 소장 공백상태보다 더한 파산의 위기에 몰릴 수도 있었다.
전 전 재판관은 판사 시절 엄격하면서도 재판을 잘하는 ‘명판사’라는 평판을 들었다. 여러 재판을 통해 약자와 소수자의 대변자라는 꼬리표도 얻었다.
그래서 많은 판사들은 “대통령을 동기로 둔 탓에 아까운 판사 하나 잃게 됐다”, “그냥 법원에 남아 있었으면 지금쯤 대법관이 돼 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한다.
전 전 재판관은 지금 살고 있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주민들에겐 검소하고 수수한 아줌마로 알려져 있다.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가 됐을 때에도 늘 아파트 상가 안의 조그만 미용실을 이용했다. 머리를 만져줬던 미용실 주인이 수년 단골인 그가 판사인지조차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티내지 않는 조용한 이웃이었다.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된 전 전 재판관이 지금까지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리기 바란다. 그가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됐을 때 밝혔던 “두려운 마음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하겠다”는 결심을 지키는 길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열려 있다.
김정훈 사회부 차장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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