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신분 돌아가는 전효숙씨 정치권에 불만표출

  • 입력 2006년 11월 28일 03시 02분


9월 8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전 후보자는 야당에서 제기하는 위헌 시비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인지 27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자진 사퇴’라는 말 대신 ‘후보 수락의사 철회’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9월 8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전 후보자는 야당에서 제기하는 위헌 시비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인지 27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자진 사퇴’라는 말 대신 ‘후보 수락의사 철회’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7일 자진 사퇴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일부 국회의원은 독자적인 법리만이 진리인양 강변하면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인신공격으로 후보자를 폄훼했다”고 정치권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인사청문회 파행 이후 줄곧 침묵을 지켜오던 전 후보자는 이날 오후 6시경 언론에 배포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서 자신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후보자 지명 과정 등에 대해 소명하며 자신이 겪었던 마음고생과 정치권에 대한 서운함을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전 후보자는 자신의 헌재 재판관 사직과 관련해 “헌재 소장의 임기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어 헌재의 독립과 안정을 위하여 가장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견해를 취하고 대법원장이 후임 재판관을 지명하기 위해 절차상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후보자의 지명 과정은 대통령과의 면담 등 통상의 인사 절차를 따랐으며, 구체적인 절차 진행을 위한 최종 통보가 실무자와의 통화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전 후보자는 “그동안 이러한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편향된 법리만이 강조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국회 밖에서 달리 의견을 표명하여 논쟁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묵묵히 국회의 다음 절차 진행을 기다려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보자의 자질에 관한 평가나 헌법과 법률 규정에 관한 견해는 국회의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국회는 표결 절차를 통해 임명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회의원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인신공격으로 후보자를 폄훼하며 사퇴를 집요하게 요구하다가 물리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했고 다른 국회의원들은 수수방관하면서 동의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정쟁만을 계속했다”고 야당 의원들을 비판했다.

당초 전 후보자는 지인들에게 “야당의 위헌 주장은 법조인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라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거취 문제로 헌재 소장 공백사태가 장기화되고 정국이 파행을 거듭하는 데 대해선 부담스러워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전 후보자는 그동안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자택 등에서 칩거하며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해 왔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전 후보자는 외부인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꺼리는 듯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외출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고 한다. 간혹 주말에는 남편인 이태운 광주고법원장이 있는 광주로 내려가 등산이나 여행을 함께 하며 마음을 달랬다는 후문이다.

전 후보자와 가까운 한 법조인은 “전 후보자가 여러 차례 물러서야 한다면 물러서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청와대에서 만류했다고 들었다”며 “본인으로서는 가혹한 시간을 보낸 것 같더라”고 말했다.

전 후보자는 이화여대 동창생을 비롯해 여성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그 같은 뜻을 내비쳤으나 이들은 “최초의 여성 헌재 소장인데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여권 인사는 “전 후보자가 24일까지 자진 사퇴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헌 시비에 대해선 결코 수긍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인지 전 후보자는 27일 ‘자진 사퇴’라는 표현 대신 ‘후보 수락의사 철회’라는 표현을 썼다.

전 후보자는 24일 오후 광주로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27일 밤에도 개포동 자택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남편인 이 고법원장은 이날 오후 10시가 넘어 관사로 돌아왔으나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닫았다.

한편 청와대가 27일 전 후보자에 대해 헌재 소장은 물론 재판관 지명도 모두 철회함으로써 전 후보자는 아무 직책이 없는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