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代役은 없다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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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실패가 거듭되고 국민의 불신이 깊어져 ‘국정 마비’니 ‘식물 정부’니 하는 말까지 나온다. 국정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정부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는 대통령 한 사람이나 한 정파만의 불행은 아니다. 그런 정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민생 구석구석과 나라의 장래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울 수밖에 없다.

이 정부에 새삼스럽게 기대를 걸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체념하는 국민이 많지만, 국민이 정부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정부가 국민을 내팽개칠 것인가. 정부는 최소한 국가 상태를 지금보다 더 악화시키지 말고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국정을 가능한 데까지 정돈해 나가야 한다. 그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존재가 대통령이다. 실정(失政) 탓에 레임덕(권력누수)을 너무 빨리 맞았고, 여당조차 대통령을 두들기는 상황이 돼 버렸지만 이 나라에서 임기 중인 대통령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국리민복(國利民福) 국태민안(國泰民安)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라면 대통령을 비판하고 무력화(無力化)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도록 권고하고 주문하되, 대통령이 국정의 악순환을 선(善)순환으로 바꾸는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응원도 해야 한다. 이런 나라 분위기를 이끌어 내야 할 주체는 물론 대통령 자신이다.

386 주술에서 풀려나 민심 따라야

노 대통령이 국난(國難)의 돌파구를 찾자면 지금까지의 국정 수행 방식 가운데 많은 것을 버릴 필요가 있다. 역주행, 역발상, 깜짝쇼, 언어의 곡예 같은 것으로는 자신의 위국(危局)을 모면할 수도 없고, 나라도 수렁에서 건질 수 없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겠다’, ‘퇴임 후에도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도 훌훌 벗어 던지고 겸허한 자성(自省) 위에서 당대의 국정안정에 몰두할 일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제기한 거국 내각도 정략(政略)을 깔고 있는 한 소모적 정쟁만 키우는 재료가 될 뿐이다. 대통령은 정치공학적 접근을 단념하고 평범한 길을 택해야 앞이 열릴 것이다. 민심의 대세를 따르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원로, 정부에 비판적인 전문가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길을 묻고 행동으로 호응한다면 상황은 크게 호전될 수 있다.

우선 다수 국민이 수긍할 만한 인사(人事)를 해야 한다. 국가 장래를 설계해 본 경험이 없고 독재정권 시절에 감옥 갔다 온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인 청와대 386 비서관들의 과잉 영향력이 오늘의 국정 실패를 부른 요인(要因) 가운데 하나다. 각 분야의 일류들을 불러 흔쾌히 일을 맡긴다면 정부 분위기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이 인정하는 사람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法治)를 훼손하는 편향된 이념코드에서 탈피하는 인적 쇄신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조석(朝夕)으로 만나는 386 비서관들에게서 해방돼야만 이념코드의 주술(呪術)을 풀고 실용으로 나아갈 수 있다. 386들도 이제는 ‘인(人)의 장막’을 걷어치우고 대통령을 놓아 줄 때가 됐다.

오기와 코드 버리면 파국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은 제발 내 생각만 옳다는 아집을 버리고, 생산적 비판에 대한 피해의식에서도 벗어나기 바란다. 시비선악(是非善惡)은 상대적인 경우가 더 많다. 거듭 지적하지만 ‘내 편’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미련도 끊는 것이 대통령 스스로 사는 길이요, 헌정 질서를 세우는 길이다.

대통령 제일의 책무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국제 사회와 공조해 북한 핵을 포기시켜야 할 정부가 거꾸로 북한 핵을 두둔하면서 동맹과의 협력에 어깃장을 놓을 일이 아니다. 자주에도 협력적 자주와 폐쇄적 자주가 있다. 폐쇄적 자주를 하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와 협력적 자주를 해야 한다.

대통령은 특히 차기 정권 창출을 주도(主導)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현명하다. KBS 직원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장을 밀어붙이는 일도 중단해야 한다. 내년 대선에 개입해 새판 짜기나 깜짝쇼를 연출하는 소도구로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면 결국 권력 이양 과정에 사회적 낭비와 혼란만 부르게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집착하던 것들을 홀가분하게 털어내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부터라도 나라의 안정과 실용에 주력한다면 국정 파국도 막고 국민과 화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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