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10시 불밝힌 평양 아파트촌…“전력 충분” 과시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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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야경3일 오후 10시경 양각도호텔에서 바라본 평양의 야경. 전력 사정이 나아진 듯 아파트 단지마다 불을 켜 놓은 집이 많았다.
평양의 야경
3일 오후 10시경 양각도호텔에서 바라본 평양의 야경. 전력 사정이 나아진 듯 아파트 단지마다 불을 켜 놓은 집이 많았다.
김장 준비김장용 배추를 가득 실은 군용 트럭이 평양 시내를 지나고 있다. 배추와 무 등을 싣고 다니는 트럭이 자주 눈에 띄었다.
김장 준비
김장용 배추를 가득 실은 군용 트럭이 평양 시내를 지나고 있다. 배추와 무 등을 싣고 다니는 트럭이 자주 눈에 띄었다.
‘김정일 명언’ 넣은 달력평양 양각도호텔 객실에 걸려 있는 북한 달력. 컴퓨터 앞에 선 여교사의 그림 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언이라며 ‘인간은 자기를 알면 강해지고 자기를 모르면 약해진다’는 글을 인쇄해 놓았다.
‘김정일 명언’ 넣은 달력
평양 양각도호텔 객실에 걸려 있는 북한 달력. 컴퓨터 앞에 선 여교사의 그림 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언이라며 ‘인간은 자기를 알면 강해지고 자기를 모르면 약해진다’는 글을 인쇄해 놓았다.
2일 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이 평양 시내에 세운 ‘삼석 닭공장’ 준공식에서 현지 직원들이 남측 관계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2일 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이 평양 시내에 세운 ‘삼석 닭공장’ 준공식에서 현지 직원들이 남측 관계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비행기는 지금 압록강을 건너 공화국 영토 위를 날고 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선군(先軍) 정치로….”

1일 오후 3시(현지 시간) 중국 선양(瀋陽)공항을 출발한 고려항공 JS156편이 40분을 날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칭송하는 여자 승조원(스튜어디스)의 기내 방송이 세 번 되풀이됐다.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주민 결속을 다지고 체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실감되는 순간들이다.

▽핵실험과 내부 단속=북한 당국은 주민과 방문자에 대한 체제 선전 및 선동의 방편으로 거리 구호를 이용한다. 구호의 내용은 북한 지도부가 하고 싶은 말로 채워지지만, 왜 그 내용을 이 시점에 내걸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북한 당국의 속사정도 짐작할 수 있다. 역설이지만 북한 거리의 구호가 정권의 속내를 알려 주는 ‘코드’ 역할도 하는 것.

2006년 11월 거리 구호의 ‘키워드’는 네 가지로 집약된다. 김 위원장과 핵, 선군정치와 강성대국론이 그것이다.

‘세계적인 핵보유국을 일떠세워 주신 절세의 령장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대표적이다. ‘선군의 위력으로 강성대국 도약에 발전을 이루자’는 형태의 구호도 많았다.

육아원과 소학교에는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 원수’라는 구호가 걸렸다. 농촌 지역인 평양 삼석구역에서는 ‘백두산의 아들 김정일 장군을 천년만년 받들어 모시자’는 내용도 관찰됐다.

북한대학원대 류길재(북한정치) 교수는 “2003년을 전후해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북한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엘리트 그룹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핵실험과 거리의 구호는 이들이 체제 유지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한 이후라서 그런지 거리 어디에서도 미국이나 한국을 비난하는 호전적인 구호는 찾을 수 없었다. 6자회담 복귀를 앞둔 지난해 7월에도 그랬다.

▽귀빈 대접 받은 민주노동당 방북단=10월 31일 평양에 도착한 문성현 대표 등 민주노동당 방북단과 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 대표단은 숙소가 고려호텔과 양각도호텔로 서로 달랐지만 방북 과정에서 두 차례 짧은 조우를 했다.

첫 번째 만남은 2일 오후 평양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였다. 민노당 방북단은 이곳 관장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 어린이들이 피아노와 서예, 무용 등 과외 활동을 하는 장면을 지켜본 후 이곳 학생들의 예술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귀빈실에서 관장과 환담했다.

민노당 방북단은 오후 5시 5분경 출연자 및 일반 관람객이 모두 착석하자 음악소리와 함께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다. 이들이 외빈 관람석 맨 앞자리에 앉으며 공연이 시작됐다.

굿네이버스 방북단 일행은 대부분 미리 객석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고 공연이 끝난 뒤 각자가 곧바로 자리를 떠 서로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3일 오후 5시경 평양 개선문 옆에 있는 금강산판매소에서 쇼핑을 하러 온 민노당 방북단을 다시 만났다. 방북단은 기자가 소속된 굿네이버스 대표단 일행이 쇼핑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30여 분 동안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겨울 준비에 한창인 북한 거리 표정=만추(晩秋)의 북한 거리는 노란색 일색이었다. 길거리 은행나무와 미루나무 잎에 노란 물이 들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과 도시의 잔디밭도 노란 물결로 변했다.

북한 주민들은 분주하게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양 시내에서는 김장용 배추와 무를 가득 실은 트럭이 분주하게 오갔다.

묘향산으로 가는 고속도로 변에는 농부들이 이삭줍기에 바빴다.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쌀 포대를 자전거로 실어 나르는 평양 주민도 보였다.

전력 사정은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이 분명했다. 순안공항을 통해 입국한 1일 밤, 평양 시내 거리 전역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방북 여섯 번 만에 처음 본 광경이다. 이날 오후 10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90% 이상의 가구에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안내원은 “지방에 중소형 발전소를 많이 지어 평양 화력발전소의 전력을 평양 시민들에게 충분히 공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춤한 경제 개혁=지난해 9월 북한 당국이 배급제 회복을 시도한 이후 2002년 시작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주춤한 것으로 보였다. 더 많은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분권화 조치를 단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남측 손님들을 대하는 식당과 상점의 직원들에게서 빠르게 확산되는 시장경제 원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남측 손님들이 많이 찾는 평양 시내 한 식당은 손님들에게 노래를 하는 직원과 음식을 나르는 직원을 따로 두었으나 지금은 두 가지를 함께 하는 직원들로 교체했다.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서다.

평양=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굿네이버스 대북지원

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회장 이일하 목사)이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함께 평양에 지은 ‘대동강제약공장’과 ‘삼석 닭공장’ 준공식이 2일 오전 현지에서 열렸다.

평양 낙랑구역에 세워진 대동강제약공장은 중환자들이 복용하는 캡슐 항생제를 1년에 1억 개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단체는 지난해에도 북측 정성제약연구소에 병 주사 항생제 공장을 세웠다.

평양 삼석구역에 세워진 닭 공장은 먹는 닭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장차 종계(씨암탉)로 부화될 달걀을 생산해 북한 전역의 양계 농장에 보급하게 된다.

굿네이버스는 올해 6월 북측 민화협과 함께 평안남도 남포에 가축용 사료공장을 준공했으며 콩기름 생산 공장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장은 “북측은 원료인 콩을 제공하고 남측은 설비와 기술, 경영의 노하우를 내놓아 장차 북측 축산업과 아동 영양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장으로 키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준공식에는 당초 150여 명의 회원이 서해 직항로 편으로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북한 핵실험 여파로 35명만 참석했다.

평양=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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