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성과 조급증… 北지원 변칙-불법도 불사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1분


적막한 도라산역 10일 경의선 남측 마지막 역인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은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적막한 도라산역 10일 경의선 남측 마지막 역인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은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 햇볕정책 왜 실패했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햇볕이다. 대북 강경론만 고집할 경우 남북관계를 오히려 긴장국면으로 후퇴시킬 것이다.”

199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정계 은퇴 선언을 하고 영국으로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3년 4월 런던대에서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연설을 통해 ‘햇볕정책’을 역설했다.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본격적인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도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은 그 상징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으로 DJ가 선도한 이래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로 착근한 ‘햇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잘못된 개념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문제 기본 발상의 문제=DJ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초청 오찬간담회에서도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은 제대로 했고 성과도 있다”며 여전히 ‘햇볕 당위론’을 폈다. 나아가 “북-미관계가 안돼서 진전이 안 된 것”이라며 미국에 책임을 돌렸다.

과연 그런가. 햇볕정책은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에 나설 수 있도록 협력과 화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자는 것이 골자. 김대중 정부는 이를 위해 대북 투자규모 제한 폐지와 투자 제한업종의 최소화를 골자로 하는 ‘경제협력 활성화 조치’를 취하는 한편 금강산 관광 등 남북협력을 통한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에 따라 햇볕정책은 남북대화 채널의 확대와 인적 물적 교류의 증대 등 일부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햇볕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채찍보다는 당근에 치중하면서 북핵 문제가 악화될 경우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는 “햇볕정책은 핵을 북한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봤기 때문에 대북지원으로 포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핵실험 결과 북한의 핵은 수단이 아닌 목표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상호주의’ 원칙 훼손=당시 DJ 정부는 남북 상호주의 원칙에 대해 남북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일대일의 등가성 상호주의가 아니라 한국 측의 관계 개선 노력에 대해 북한도 일정한 수준의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원만 있었을 뿐, 그에 상응한 북한의 행동 변화를 끌어내는 것은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실패로 귀결됐다는 지적이 많다.

선(先) 경제협력, 후(後) 북한 변화 유도로 한국이 먼저 북한에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줘 ‘고난의 행군’ 등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며 정권 유지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던 북한에 선택의 폭을 넓혀 주자는 것이 DJ 정부의 생각이었다.

이는 경제 지원과 협력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남북한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되면 북한은 이를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배경에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시각은 지속적인 대북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꾸준히 핵무기 보유를 추진해 왔음이 드러나면서 그릇된 판단임이 밝혀졌다.

또 경제협력 확대 과정에서 남한의 지원은 최대한 끌어내면서 햇볕정책으로 인한 체제 변화를 우려해 신중을 기했던 북한의 태도로 볼 때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은 “북한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북한은 남한의 대북지원을 핵 보유에 고려해야 할 변수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벨평화상 등을 겨냥한 조급증=상호주의 원칙의 훼손은 북핵문제 등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북한 중심으로 풀어가려는 무리수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북한이 핵문제를 북-미 간에 해결할 문제로 보고 있음에도 대북포용정책에 매달린 나머지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정세변화에 따라 대북정책을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

오히려 핵무기 개발 등에 전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음에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을 불법으로 북한에 건네는 등 투명하지 못한 대북지원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을 우습게 여기게 하는 빌미가 됐고, 그 결과 북한에 끌려 다니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는 6·15공동선언 등을 이끌어냈다는 성취감으로 임기 내에 햇볕정책의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DJ의 조급증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이 같은 조급증은 국민적 합의 없는 밀실 대북지원으로 남남갈등을 유발했고, 결국 햇볕정책의 추진력을 상실케 하는 악순환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DJ는 남북문제를 조급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주변의 조언을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DJ가 이처럼 햇볕정책에 집착한 것은 남북 화해를 성과로 내세워 노벨평화상을 받으려 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DJ의 일부 측근들은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노벨평화상 수상 환경 조성을 위한 조직적인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우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햇볕정책은 북한을 지원하면 어느 순간 북한도 협력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것이 핵심”이라며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성과를 빨리 내려는 조급증 때문에 이런 원칙을 훼손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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