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벌거벗은 임금님’과 비슷”

  • 입력 2006년 6월 2일 03시 03분


“아파트 값 잡지도 못하면서 세금은 잔뜩 올려놨지, 돈이 안 도니 자영업자들도 못살겠다고 난리지…중산층이든 서민이든 누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겠나. 이 정도 성적 낸 것도 기적이라고 본다.”

열린우리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1일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 이반 원인을 묻자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역대 집권당 사상 최악의 참패를 한 데다 창당 2년 6개월 만에 당의장이 8번이나 교체되는 상황에 처한 열린우리당의 이날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대다수 의원들은 참패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았다. 여권의 무능과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분노로 이어졌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최대 패인은 부동산 정책=의원들이 꼽은 가장 큰 패인은 경제정책, 특히 오락가락한 부동산 정책이었다. 여권은 서민주거 안정을 앞세우며 수십 차례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집 걱정을 덜었다거나, 주택 사정이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국민은 별로 없다는 것.

15대 때도 의원을 지낸 한 재선 의원은 “1998년 이전,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회의 시절에만 해도 ‘서민의 정당’이란 구호에 맞는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권 여당인데도 만날 개혁한다고만 한다. 시민은 ‘개혁타령’과 무능과 무책임에 신물이 난다고 하더라”고 했다.

▽말실수와 전술 실패=한 호남 출신 의원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앞 다퉈 실수를 해 상승세를 꺾어놓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더라”고 자조했다.

한나라당의 공천 파문이 터졌을 때 김한길 원내대표가 ‘온 국민이 경악할 만한 비리’ 발언을 해 비판을 샀던 일, 지도부가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광주에 총출동했을 때 이원영 의원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 투입은 질서유지 차원”이라고 발언해 역풍을 부른 일, 선거 막판에 정동영 의장이 돌연 민주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등을 거론하고, 이에 김두관 최고위원이 정 의장의 탈당을 요구하며 공격한 일 등을 꼬집은 것.

‘지방권력교체론’이란 구호가 너무 모호해 한나라당의 ‘노무현 정권 심판론’에 묻혔다는 지적과 함께 지역구도 타파를 내걸고 출범했음에도 당 내부에서조차 지역갈등으로 삐걱거리는 모순을 드러낸 것도 자멸의 원인으로 꼽혔다.

한 재선 의원은 정체성 상실을 패인으로 분석했다. 전국 정당을 강조하느라 호남을 등한시하고, 비정규직 처리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보이는 등 지역적으로도, 계층에서도 지지기반이 붕괴됐다는 것.

▽노무현 대통령도 책임져야=4선 중진인 장영달 의원은 1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서 “노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해 연대책임을 물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참패 원인이 노 대통령에게 있다는 당내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여성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무능도 문제지만 무능력과 독선으로 비친 노무현식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과 염증이 더 심각한 것 아니냐”고 했다.

노 대통령이 이번 선거 참패와 관련해 대국민사과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이대로 가다간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혼자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책 마련도 난감=의원들은 이번 기회에 민심을 바닥부터 분석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극소수지만 몇몇 의원은 “차라리 참패한 게 미래를 위해선 나을지 모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나 방향성에 대해 새로운 모색을 하다간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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