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연욱]靑비서관의 고약한 말본새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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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강아지가 청와대를 보고 짖어도….”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18일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의 서울대 특강 발언을 보도한 신문을 보고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이같이 비난했다.

이 회장은 17일 특강에서 “장관들과 대통령의 독대(獨對)가 힘들어져 대통령과 생각이 달라도 설득할 수 없다” “(청와대) 수석들은 현황파악만 한다” “무소신 장관이 장수한다”며 참여정부 운영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2003년 12월부터 올 2월까지 2년 2개월간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고 지금은 경제5단체장 중 하나인 무협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정권 때는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청와대 비서관은 몇 달 전까지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이 회장을 ‘효자동 강아지’에, 그의 발언을 ‘강아지 짖는 소리’에 빗댄 셈이 됐다. 그렇다면 그런 청와대 비서관은 무엇에 빗댈 수 있을까.

청와대 비서관은 또 “보도 내용이 사실일지라도”라고 전제한 뒤 “이런 내용이 (신문의) 1면 톱거리가 되는지 따져보겠다”고 했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으나 이번처럼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기사의 크기나 배치까지 문제 삼은 적은 없다.

기사의 경중판단은 전적으로 언론과 독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청와대 비서관의 이 같은 행태는 현 집권세력의 언론간섭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준다.

청와대 브리핑은 특히 본보를 겨냥했다. 제목부터가 ‘동아일보여, 그렇게 한가한가’였다. 그러나 이 회장의 발언은 본보 외에도 여러 언론매체가 함께 보도했다. 이 회장의 발언을 놓쳤던 일부 신문은 하루가 지난 뒤에도 기사와 사설로 크게 다루었다. 결국 언론의 기사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문제 삼은 청와대 비서관의 비뚤어지고 주제넘은 언론관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본보와 같은 날 이 회장의 발언을 보도한 일부 언론 매체에 대해서는 청와대 비서관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은 것도 의심스럽다.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부릅뜬 권력의 일탈이 걱정스럽다.

정연욱 정치부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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