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호섭]對日 강경노선보다 실리외교를

입력 2005-11-07 03:05수정 2009-10-0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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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3월 대일(對日) 강경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

‘한일관계 관련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뿌리 뽑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고까지 경고했다. 그 전쟁에서 발생되는 어려움을 의연하게 감당하자고 국민에게 호소했고, 대통령 자신도 도움을 청하겠다고 했다.

이렇듯 결연한 노 대통령의 강경 노선을 고이즈미 총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맞서려고 하는 듯하다. 지난달 중순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5년 연속해서 참배했다. 또 최근 개각에서는 보란 듯이 강경 보수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일제 총독부의 창씨개명 정책은 조선인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인물을 외상에 임명했다. ‘뿌리 뽑혀야 할’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일본의 외상을 상대로 교섭하게 될 우리나라 외교 당국의 처지가 한층 어렵게 됐다.

과거사 현안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한 대통령의 외교 노선이 일본 총리에게 무시당했으니 앞으로 대통령이 어떤 대일 정책을 들고 나올지 매우 우려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실제로 대일 외교전쟁이 일어난다면 각종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하고, 어떻게 대통령을 도와 드려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다행스럽게도 국민의 이런 걱정을 아는 듯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양국 외무장관 회담은 얼굴 붉히는 일 없이 끝났다. 11월에 열리는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한일 정상회담도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최근 한일관계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특별히 악화된 것 같지 않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수행하는 대일 외교전쟁은 국제정치학에서 일반적으로 상정하는 형식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는 한다.

노 정권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한다면 외교사에 큰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만약 해결하지 못하면 그 이유를 상대방에게 돌린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라 국내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일 과거사 현안은 특정 정권이 해결하겠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과거 정권들도 과거사 현안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 것이지, 해결할 의지나 문제의 심각성을 몰라서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사 현안이 뜨거운 외교 쟁점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한일 양국이 조심스럽게 ‘관리’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 정부와 고이즈미 총리의 최근 자세는 한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것으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다. 따라서 국익이 목표인 외교는 현실적 한계 속에서 수행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고매한 명분이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국력과 자원이 부족하면 공허한 이상이 되는 것이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대일 외교에 있어서 우리의 외교 목표는 우호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다. 일본과 관련된 과거사 현안의 해결도 이 목표 속에 위치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일 양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유하며 양국이 협조하면서 풀어 가야 할 현안이 과거사 외에도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한일 간 협조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의 체제 전환을 위한 경제적 지원에 있어서도 일본의 협조는 앞으로 매우 중요하다. 한일 두 나라 국민에게 상호이익이 되는 문화교류, 경제교류, 시민사회의 교류 등은 점점 긴밀해지면서 교류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한일관계를 고려한다면 대통령의 대일 강경 노선은 당당하게 실리외교로 전환돼야 한다. 대통령의 체면이 깎이는 것이 겁나서 나라와 국민의 이익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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