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효자의 이라크에서의 죽음

  • 입력 2005년 10월 27일 1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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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초순 미국 미시간주 워렌. 이라크에 파견된 미국 해병대 소속 김인철 상병 자택에 침통한 표정의 해병대원 3명이 나타났다. 누나인 수나 씨가 이유를 물었지만 이들은 "대답하기 곤란하다. 김 상병 부모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만 했다.

김 상병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자 이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김 상병이 12월7일 7t트럭 위에서 무기를 소지한 채 작전을 수행하다가 트럭이 전복되면서 차에 깔려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김 상병은 외동아들이었다. 당시 나이는 23세.

김 상병은 혹시 자신이 이라크에서 사망하게 되면 부모님에게 처음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이 2000명을 돌파한 가운데 미국에서 교포 2세들을 상대로 발간되는 영문 잡지 '코리암저널'(대표 송인수) 최근호는 김 상병의 애절한 사연을 이렇게 전했다.

김 상병이 2001년 해병대에 입대한 것은 대학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1999년 미국에 이민 온 그는 대학에서 한의학을 공부하기를 원했다. 누나인 수나 씨는 "동생은 세탁소에서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께 추가로 학비 부담을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며 "대학학자금 지원혜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입대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김 상병은 소문난 효자였다. 2004년 상반기 이라크에 있는 동안에도 항상 편지에서 부모님 건강을 걱정했다. 그해 여름에 돌아온 그는 전투 중 숨진 동료 때문에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망한 동료들 사진을 들고 다녔던 김 상병은 수나 씨에게 "누나, 이번에는 이라크에 가고 싶지 않아. 꼭 죽을 것 같아 겁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라크로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특별한 선물을 줬다. 평소 아버지 자동차가 자꾸 고장 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그는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현대자동차 액센트를 선물로 사줬다. 결국 자동차는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됐다.

김 상병 아버지는 지금도 자동차만 보면 아들 생각에 말을 잇지 못한다고 코리암저널은 전했다.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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