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문홍]6자회담 밖의 민간 정보통들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14분


지난달 4차 6자회담이 중단된 뒤 재미동포 K 회장을 만났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이래로 평양을 안방 드나들듯이 해 온 ‘대북사업 1세대’인 K 회장은 북한 권부(權府)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이랬다.

“북한은 이미 미국과 핵 문제를 타결 짓기로 결정했어. 미국도 그걸 잘 알고 있고. 다만 일괄 타결(package deal)을 위한 수순(手順)과 시기를 조정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지. 두고 보라고. 늦어도 내년 상반기쯤에는 내 말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K 회장의 말을 여기에 다 옮기기는 어렵다. 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한 그의 주장을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상황은 그의 말과 다르게 전개돼 오지 않았는가. 지난번 4차 6자회담은 합의문을 내지 못한 채 중단됐고, 내일부터 속개되는 회담의 전망도 여전히 안개 속이다.

특이한 것은 그 얼마 뒤에 만난 K 사장의 ‘판세 읽기’도 K 회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시 북한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보통’인 K 사장은 북한이 핵 포기를 대가로 미국에 요구한 조건들, 이에 대해 미국이 내놓은 북-미(北-美) 관계 정상화까지의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10여 년 동안 대북사업에만 전념했다고 하지만 민간인들이 어떻게 이런 1급 정보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회의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대북사업을 해 온 이들 중 일부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남북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대기업 총수들의 방북(訪北) 물꼬를 트는 데 매개자로 나섰고, 남북 당국 사이에서 이따금 메신저 역할도 했다. 눈에 보이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정보력과 ‘감(感)’을 무시할 수 있을까.

북한 핵 문제의 해법 찾기는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가 얽히고설킨 다차원 방정식이다. 이해 당사자가 많은 만큼 한국이 모르는 사이에 중대한 국면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점에서 ‘모든 협상 내용은 한국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해 온 정부는 좋게 말해 지나친 자신감, 나쁘게 말하면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예컨대 정부는 지난번 4차 6자회담이 활기를 띠었던 배경으로 대북(對北) 전력 제공안(案)을 제시한 한국의 역할이 컸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남한의 ‘중대 제안’에 북한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북-미가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한 진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정부가 일부 관찰자의 주장에 지나치게 휘둘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냉철한 현실 인식을 갖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주체는 민간이 아닌 정부다. 그러기 위해선 상황을 원근(遠近)으로 읽고, 뒤집어도 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검증된 정보가 부족하고, 행동도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을 상대하려면 남다른 ‘사회과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최근 들어 매사에 북한을 두둔하는 모습만 보여 온 정부는 그런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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