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조 고검장 “富者공무원인 내가 돈문제로 상처”

  • 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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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회장의 처남으로, 때로는 중앙일보 사장의 동생으로 남에게 인식되거나 거론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왜 인간 홍석조로 보지 않고 ‘누구의 무엇’으로 표현하느냐고 대놓고 말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자료인 이른바 ‘X파일’에 삼성그룹에서 ‘떡값’을 받은 것으로 거론된 홍석조(洪錫肇·52·사진) 광주고검장이 1일 이 사건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홍 고검장은 홍석현(洪錫炫) 전 중앙일보 사장의 친동생이자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처남.

홍 고검장은 이날 검찰 내부통신망에 ‘검찰 가족 여러분께’라는 제목으로 A4용지 7쪽 분량이나 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날은 그가 검사 생활을 시작한 지 만 29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검찰 가족 여러분께 미안하다”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과연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됐는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홍 고검장은 “무슨 해명을 한다는 것이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것 같아 침묵했지만 침묵이 사실상 시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생각에서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홍 고검장은 “나는 형에게서 검사들에게 삼성 떡값을 돌리라는 명목으로 돈을 전달받은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형이나 형이 나를 삼성 로비용 창구로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려 했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이 ‘검사로서 살아가는 방식’도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기대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처신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있는 놈이 되게 짜게 군다”는 말을 듣지 않으면서 또 “부자라고 돈을 막 쓰고 다닌다”는 말도 안 듣도록 처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감정이 격해진 듯 홍 고검장은 “속된 말로 내가 검사로서 끝까지 출세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후배들이나 직원들에게 좀 더 나은 회식을 베풀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 고검장은 “이런 항목으로 글을 쓰는 것이 괴롭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며 자신과 삼성, 중앙일보의 관계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

그는 “때로는 삼성 회장의 처남으로, 때로는 중앙일보 사장의 동생으로 남에게 인식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며 “그러나 세상은 자기 편한 대로 돌아가는 것이라 아예 포기하고 나름대로 ‘삼성’과 ‘중앙일보’와는 거리를 두고 검사 생활을 해 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검사로서 꿈과 포부를 갖고 ‘나의 인생’을 살아왔다”며 “행정부 공직자 중 제일 부자라는 내가 돈 문제로 공직 생활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공직에 더 미련은 없지만 지금 내가 그만둔다면 터무니없는 주장을 인정하는 꼴이 아니겠느냐”며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편 홍 고검장의 글에 대해 후배검사 수십 명이 홍 고검장을 지지하거나 격려하는 댓글을 달았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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