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뭉친다]<上>지식인들 왜 움직이나

  • 입력 2005년 2월 2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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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수성향 지식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조직화하면서 현실 비판적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본보의 보도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기 위해 시작된 ‘뉴 라이트’ 운동이 집단화 연대화 단계로 접어든 가운데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지식인들도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울러 보수 지식인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진보 지식인들도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지식인 사회의 지형도 변화와 이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3회 시리즈를 통해 짚어본다.》

사회운동보다는 개별 논리 개발에 더 치중했던 보수 성향의 지식인들이 연대를 통해 정치 사회적 발언을 강화하고 나섰다.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정치 지형의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뒤 한국현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 시장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 한미동맹의 약화와 유화적 대북(對北) 정책 추진 등으로 한국 사회가 좌(左) 편향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이 한결같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보성향의 지식인들이 정부조직에 들어가거나 각종 위원회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반면, 과거 정권의 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보수 성향 지식인들에게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진 것도 조직화를 통해 운동에 나서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로 보인다.

‘뉴 라이트’ 운동은 과거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30, 40대의 상대적으로 젊은 인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먼저 조직화에 나선 것도 학생운동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 이어 이미 사회적으로 개인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기성세대 보수 지식인들도 ‘지식인선언그룹’을 통해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다. 보수 지식인의 다양한 ‘사회 세력화’ 움직임을 분석하면 여러 가지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 현대사=보수 성향의 지식인들은 한국의 현대사를 성공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인식하고 평가한다. 광복 후 전쟁과 가난, 부패와 독재도 있었지만 단기간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정치적 민주화를 성취한 것을 자부한다. 그리고 그런 성취의 배경에는 해방공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선택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통해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거사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고, 부패와 독재의 기억만이 강조되고 있다고 이들은 우려한다. 한국을 건국하고 이끌어온 우익 지도자들의 어두운 측면만을 부각시킴으로써 한국현대사 자체를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한다. 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보로 인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반미감정에 부화뇌동해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게 보수 지식인들의 비판이다.

▽성장이 먼저다=보수 성향의 지식인들은 경제정책에 있어서 분배보다는 성장을 강조한다. 파이를 나누기 전에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면서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면 경제성장의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분배는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경제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분배를 실현하는 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개입을 최소로 줄이고 사회 개별단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게 보수 지식인들의 입장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기업과 언론, 사학재단의 활동을 규제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다. 또 정부가 대기업 집중을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보는 반면 노사 갈등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것은 경제문제를 강자와 약자 간에 뺏고 빼앗기는 ‘제로 섬(zero sum) 게임’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비판적 대북인식=보수 성향 지식인들은 또 북한 문제를 기본적으로 인권문제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일(金正日) 정권의 독재체제 아래서 억압받고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의 인권상황 개선과 대북정책을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보수 성향 지식인들은 어떤 형식이나 체제로든 민족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의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통일 한국의 근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북한정권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오히려 북한정권의 권력만 강화시켜주고 정작 북한 주민의 피폐한 삶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게 보수 지식인들의 평가다. 또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치중하느라 한미동맹의 약화를 부르는 것은 60년간 지속된 한국의 안보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보수 성향의 지식인들은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의 영향으로 한국현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반면 북한에 대한 인식이 긍정 일변도로 바뀌는 것을 한국의 정통성의 위기로 보고 있다. 이들이 국가보안법의 전면 폐지에 반대하는 것에는 단순한 안보의식 외에도 이 같은 정통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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