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큰소리에 지도부 ‘우물쭈물’

  • 입력 2004년 12월 31일 0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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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강경파의 승리였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가까스로 마련한 절충안은 결국 열린우리당 강경파에 의해 거부됐다.

특히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싸고 열린우리당 내 강온파 대립이 노골화되고 있어 자칫 심각한 당내 분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0일 오후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 주선으로 회담을 가진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가 오후 4시경 ‘의장 중재안’을 들고 각각 의원총회를 소집할 때만 해도 낙관적 전망이 팽배했다. 사립학교법안을 제외한 ‘3대 법안’과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 예산안, 이라크 파병 연장동의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의총에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임종인(林鍾仁) 의원 등 국보법 연내 폐지론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기존 당론(폐지 후 형법 보완)보다 후퇴한 대체입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틴 것.

온건파가 “여론도 만만찮고 한나라당이 강력 반대하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어쨌든 현 국보법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며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수적 우위를 자신한 온건파가 투표를 통한 당론 변경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내대표 회동에서 잠정합의를 했던 천 원내대표는 정작 강경파 의원들의 주장이 이어지자 “당론을 고수하고 국보법 연내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 국회 밖에서 국보법 폐지 투쟁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며 강경파의 손을 들어줬다. 연말 대타협이 무위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온건파 중진들인 문희상(文喜相) 임채정(林采正) 배기선(裵基善) 유인태(柳寅泰) 의원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의총장을 빠져나와 따로 모임을 갖는 등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의장 중재안’의 성격을 둘러싸고도 열린우리당 강온파는 달리 해석했다. 천 원내대표 측은 “양당 중진들과 국회의장이 마련한 것으로 합의된 게 아니다. 천 대표는 소외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몇몇 중진 의원은 “전날(29일) 중진들이 마련한 타협안에 천 대표도 동의해놓고 하루 만에 번복했다”고 반박했다. 한 재선 의원은 “수적으로 30%도 안 되는 강경파가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여야 타협에 공을 들여온 이부영(李富榮) 의장도 “잘 하면 이념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너무 피곤하고 맥이 빠진다”며 말문을 닫았다.

일부 온건파 의원은 “이제 나도 모르겠다”며 자포자기한 표정이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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