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 ‘날치기 상정’]與野-국회의장 해법 제각각

  • 입력 2004년 12월 7일 00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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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일로 하겠다.”(한나라당), “단독처리는 안 한다.”(열린우리당)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안 및 형법개정안의 변칙 기습상정을 시도한 뒤 여야의 반응은 겉으로는 차분했다. 한나라당은 아예 변칙상정 행위 자체를 무시하고, 정상적인 법안심의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의 물꼬를 텄다며 국민적 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양측 내부는 여전히 들끓고 있다.

▽열린우리당=국보법 폐지안 상정이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상정은 했지만 강행처리는 안 하겠다”며 한나라당 진무(鎭撫)에 나섰다.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상정을 했다고 해서 이것을 단독처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정은 국보법 폐지 논의의 출발이다”고 말했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도 “국보법 폐지안 상정은 강행처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범국민적 토론을 보장하겠다. 한나라당은 국보법에 관한 대안을 내놓고 심의를 하자”고 말했다.

따라서 정기국회 회기 내, 또는 정기국회 직후 열릴 임시국회에서 국보법 폐지안을 처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어차피 국보법 문제는 처음부터 상정 자체가 목표였다”며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9일로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 중 예산안을 처리하고, 임시국회에서 기금관리기본법 등 민생관련법안과 국보법을 제외한 ‘4대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7일 행정자치위와 교육위, 문화관광위에서 친일진상규명법과 사립학교법, 언론관련법의 상정을 강행할 예정이다.

▽한나라당=“열린우리당의 날치기 미수 난동 사건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법사위 사태를 이렇게 정의했다. 회의 진행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한 만큼 ‘원천무효’라는 주장이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법사위 산회 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최연희(崔鉛熙) 법사위원장은 의사진행을 거부하거나 지연한 적이 없으며 (법안심사) 소위가 끝나자마자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위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밝히고 “법사위 회의는 적법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여당의) 국보법 폐지 시도에 대해선 당의 운명을 걸고 국가 존립과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최 위원장도 이날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열린 법사위 회의에서 “정기국회 회기 중 법사위 상정 대상 법안은 기본적으로 예산 부수 법안이며 ‘긴급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가 허용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당분간 열린우리당의 법안 상정 주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국보법 폐지안의 ‘날치기’ 상정을 오히려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 지도부가 7일부터 법사위와 다른 상임위를 정상 가동키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해 예산안과 민생 관련 법안 처리엔 적극 협조함으로써 ‘양비(兩非)론’을 비켜가겠다는 판단에서다.

▽김원기(金元基) 해법은=국보법 폐지안이 변칙 상정된 뒤 김원기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제3의 길’을 제시했다. 변칙 상정 자체에 대해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논란을 자제하고 이 문제를 정당 지도부가 대화와 절충을 통해 해결하라는 것이다. 김 의장은 국보법 문제에 대한 여야의 접근방식을 매우 답답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의 해법은 열린우리당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김 의장이 상정의 법적효력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고 “시간이 있으니 여야가 더 논의하라”고 중립적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우리당에는 의장의 말씀이 타격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의장과 천 원내대표는 이를 내색하지 않고 “국보법 논란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충정이 담긴 발언”이라며 “국회의장의 충정을 높이 산다”고 말했다.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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