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집권 2기]<5·끝>“北核 美입장 불변…北이 달라져야”

  • 입력 2004년 11월 9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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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재선 성공과 거의 동시에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총공격을 승인했다. 집권 2기 출범을 앞두고 그만큼 안보정책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향후 4년간 부시 행정부와 함께 북한 핵 해법을 찾아야 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염두에 둬야 할 대목이다. 동아일보는 8일 미국 워싱턴 소재 국제경제연구소(IIE) 회의실에서 동북아 및 안보전문가를 초청해 부시 대통령 집권 2기의 대외정책, 특히 동북아정책 방향에 대해 좌담회를 가졌다. 본보 권순택 워싱턴특파원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는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 래리 워첼 헤리티지재단 부회장 겸 아시아연구소장, 마커스 놀랜드 IIE 선임연구원이 참석했다.》

▽사회=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에도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방 및 동맹국과 충분한 조율을 거칠 것으로 보는가.

▽놀랜드=한국인을 만나면 늘 이런 식의 질문을 받는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일방적이지 않다. 공화당 정부는 초기에는 많은 주변국이 참여하도록 다자주의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북한 핵문제도 부시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반복해 강조했던 만큼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외교적 해결 가능성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보수주의자인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도 공산국가 중국을 포용했다. 공인된 보수주의자인 탓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보다 평화적 해결 가능성은 더 커졌다. 문제는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전향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6월에 대북 제안을 내놓았지만, 북한은 회담장에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의 자세 변화가 없다면 미국은 단호(tough)할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의 재출범에 대해 북한이 입장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다. 공은 북한 쪽에 넘어가 있다.

▽오버도퍼=부시 대통령은 대선 TV토론에서 “(케리 후보가 제안한) 북-미 양자회담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6월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식 해법을 내놨고, 제임스 켈리 미 대표와 김계관 북한 대표가 2시간 반 동안 단독 회담을 가졌다. 미국과 북한은 이미 양자회담 형식으로 달려가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6∼8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했다는 점도 미국의 태도가 10년 전 제네바합의 때와는 다를 것이란 예상을 가능케 한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을 만나서 “유연한 자세를 취하라”고 공개 촉구(urge)하는 등 동맹국도 미국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결국 북한과 협상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북한은 힘을 숭배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북한 역시 정부와 의회까지 장악한 부시 대통령의 등장에 어떻게든 대응할 수밖에 없다.

▽사회=10년 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제네바합의는 ‘북한의 핵동결-에너지 보상’ 구도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민주주의 전파가 궁극적인 테러방지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워첼=인권 요소는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물론 제네바합의와 같은 나이브한 형식도 아닐 것이다. 북한의 정권교체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고, 북한의 민주주의를 앞당길 수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단도직입적인 정권교체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에 중국식 체질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북-미간 합의가 예상된다. 중국이 경제개방을 한 뒤 형성된 두꺼운 중산층이 중국의 변화를 불렀다. 물론 정치적 개방은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오버도퍼=1970년대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北京) 방문 때 현장에서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와 지금의 중국은 몇 광년(光年) 떨어진 나라 같다.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제시한 햇볕정책도 같은 변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은 이에 응해 2002년 7·1경제개선조치를 내놓았다. 물론 아직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또 북핵 해결과정에서 북한의 인권 및 재래식 무기를 본질적인 이슈로 다루기엔 핵 문제가 너무 엄중하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이런 논리를 좋아하겠지만, 이런 문제가 본협상에서 거론되면 사안이 복잡해질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미국식 민주주의 전파 노력은 일단 중동지역에 적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놀랜드=중국과 북한의 차이라면 중국은 돈을 벌 기회가 있는 나라다. 따라서 기업인들이 미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대중국 정책이 보다 온건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행정부와 의회에서 북한을 위해 목소리를 낼 주체가 없다. 과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국전문가가 다뤘다. 그러나 이젠 비확산전문가 즉, 안보전문가의 손에 좌우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들은 주미 한국대사관이 자주 상대하던 친숙한 인물들이 아니다.

▽사회=북한이 부시 행정부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또 실제 성취할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오버도퍼=북한의 시각에서 핵문제를 살펴보자.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실체를 인정받고,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른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중단해 달라는 것이다. 성과 없이 진행돼 온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현 행정부 인사건, 과거 정부 인사건 미국의 특사가 김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워첼=북한은 미 행정부와 의회의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일지라도 미국 법률을 무시한 채 대북 접근을 하라고 할 수 없다. 북한에 이런 점을 교육시켜야 한다. 북한이 미국에 불가침조약을 요구하면 일이 꼬일 뿐이다. 미국은 어느 나라와도 이런 조약을 맺지 않는다.

▽오버도퍼=북한이 진짜 원하는 것은 완전한 인정(full acceptance)의 상징적 조치인 것 같다.

▽사회=부시 행정부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GPR) 계획을 추진해 왔다. 한국인은 주한미군의 역할 및 작전범위에 우려가 크다. 중국-대만관계가 악화될 때 평택 공군기지의 미 공군이 발진하면 중국은 이를 미국만이 아니라 ‘한미 양국의 적대행위’로 판단할 수 있다.

▽워첼=미국은 주한미군을 동북아 분쟁 억제에 쓰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1990년 미 행정부가 ‘동아시아 전략구상’ 연구 작업을 할 때도 그런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적 욕구는 제한돼야 한다. (동북아의) 전력 허브(PPH) 기능은 주일미군이 맡으면 된다. 주한미군에는 한반도 분단 상황이 해소되거나, 남북간에 완벽한 평화협정이 맺어진 뒤에야 이런 기능이 주어질 것이다.

▽오버도퍼=미군이 대만사태에 개입할 경우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받을 가능성은 없다. 미일 양국이 1996년 사전동의 조항에 합의하긴 했지만, 그 조항이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회=한미관계와 동북아의 가까운 장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놀랜드=중국은 2기 부시 행정부 기간에도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 것이다. 특히 북한이 돌발변수로 남아 있는 한 중국의 영향력은 과대평가되게 돼 있다. 나는 향후 4년간 동북아 안보질서에서 ‘한국의 지향점’에 더 주목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지금의 노선을 유지할지, 중도적(central)으로 되돌아올지 모르겠다. 현재의 좌표를 계속 밀고 나갈 경우 미국의 외교정책과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워첼=미국 정부와 의회는 한국의 북한 지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은 금강산 관광을 위해 연간 1720만달러를 지불하고, 철도연결 공사에 1억7700만달러를 썼다. 이런 지원은 한미간에 정치적 갈등을 부를 수 있다.

정리=김승련 워싱턴특파원 srkim@donga.com

▼참석자 약력▼

● 돈 오버도퍼

△프린스턴대 졸업

△1953년 주한미군으로 복무

△1959∼1993년 워싱턴 포스트에서 외교안보 전문기자로 활동

△‘두개의 한국(The Two Koreas)’저술

● 래리 워첼

△콜럼버스대 졸업

△육군 소속으로 32년간 복무한 뒤 대령 예편

△하와이주립대 정치학 박사

△미 육군대 전략연구국장 역임

● 마커스 놀랜드

△스와스모어대 졸업

△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학 박사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소속 선임 이코노미스트

△‘김정일 이후의 한국’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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