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권문제]“北 눈치보기… 언제까지 쉬쉬하나”

  • 입력 2004년 10월 19일 18시 41분


《‘국제사회와 남북대화에서 더 이상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하지 마라.’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정부에 낸 정책건의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19일 북한인권법안에 서명해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정부의 대북 인권정책의 현주소와 개선방향 등을 점검해본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정부에 대해 ‘국제사회와 남북 대화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거론하라’는 요지의 건의서(본보 19일자 A1면 보도)를 내자 정치권과 정부 내에 파장이 일고 있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 앞서 “북한 인권문제는 정부가 이미 밝힌 4원칙에 따라 화해와 접촉을 통한 ‘작은 발걸음’ 정책이 필요하다”며 “공산국가의 인권문제는 압박으로 해결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 인권법이 미국 상원을 통과하자 이달 초 △인권은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른 특수성 인정 △평화번영정책을 통한 긴장 완화에 따른 북한 인권 점진적 실질적 개선 도모 △남북관계에 미치는 악영향 최소화 등 ‘북한 인권문제 4원칙’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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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나라당은 국회 차원에서 대북 인권결의안을 내는 등 북한 인권문제를 이슈화할 태세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결의안엔 정부가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해 적극적 자세를 보이고 △탈북자를 적극 지원하며 △북한의 인권 탄압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라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사무총장은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에서도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환경의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인권신장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국가보안법까지 폐지한다는 정부가 정작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할 북한 인권문제에 함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통일연구원의 정책건의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정부 주변의 미묘한 기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9일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인권법에 서명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매년 대북 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조용한 외교’만을 고집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이날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남북 당국자간 회담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못했던 것은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태도를 재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당장 인권정책에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낮다. 북한 인권문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세운 ‘북한 인권 4원칙’도 수사(修辭)에 불과하며,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행동지침은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북대 북한학과 허만호(許萬鎬) 교수는 “정부 내 북한 인권문제 담당자가 인권문제 전문가가 아닌 탓에 인권의 보편성보다는 북한문제의 특수성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며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현재의 정책을 밀고나갈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당국간 대화에서 직접 거론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회담에 관여하고 있는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인권문제의 ‘인’자만 거론해도 북한측은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 버린다”며 “인권문제 제기를 김정일(金正日) 체제의 붕괴 의도로 직결시키는 등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태원기자 taewon_ha@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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