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본보기자 통화 조사]"알권리-언론자유 침해"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55분


국가정보원이 본보의 ‘중국 외교부 우다웨이(武大偉) 부부장 극비 방한’ 단독 보도에 대해 해당 기자의 통화기록까지 조회하며 무리하게 보안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중국의 ‘협박’에 가까운 항의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보안조사 배경에 대해 “기사 내용이 국가 기밀은 아니지만 중국 측이 ‘보안 책임’을 물으며 강력히 항의하고 있어 ‘해명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보 기자 통화기록 조회와 괴(怪)전화들=국정원은 우 부부장이 중국으로 떠난 직후인 25일 오후부터 외교통상부에 대한 대대적인 보안조사에 착수했다. 본보 보도가 나간 23일 이전에 기자와 통화했던 외교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통화 내용과 본보 기자와의 친분 정도를 상세히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동아일보 기자와 통화한 날짜와 시간을 제시하면서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고 물어왔다”며 “이는 기자의 통화기록을 조회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본보 기자와 학연 지연 또는 업무상 친분이 있는 관계자들에게 “그 기자와 개인적으로 친한 것 같은데 취재 경위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24일과 25일 본보 기자 가족들의 휴대전화로도 발신자 번호가 찍히지 않는 정체불명의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와 “이름이 뭐냐. 외교부 같은 정부기관에서 근무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본보 기자에겐 24일 오후 6시15분 “외교통상부 차관입니다”라고 신원을 밝힌 전화가, 오후 8시49분엔 ‘서주석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기획실장입니다’라고 밝힌 전화(발신번호 02-451-××××)가 걸려왔다. 그러나 이들은 “목소리가 다른데, 누구냐”고 본보 기자가 묻자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본보가 외교부 차관실과 서 실장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그런 전화를 건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안팎의 비판 여론=정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절대 비밀’이 어디 있느냐”며 “이런 식의 과도한 보안조사는 언론뿐만 아니라 공직 사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측은 이와 관련해 “정상적인 보안 조사이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안전보장에 위해를 주는 경우에만 영장 없이 통화기록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국정원의 이번 조치는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中선 ‘5대사항’ 책임회피 ‘뒤통수’▼

한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보도 자료를 통해 고구려사 관련 한중간 양해 사항을 공개하면서 “양측은 고구려사 문제를 정치화시키지 않고 문제를 복잡하게 하지 않는 데 인식의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발표한 5대 양해 사항 중 △고구려사 문제가 중대 현안으로 대두된 데 대해 중국측은 유념한다 △중국은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기술(왜곡)에 대한 한국측 우려에 대해 이해를 표명한다 등 중국측 책임 부분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자신들 책임 부분만 빼고 발표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한국이 발표한 5대 양해 사항에 대해 중국측이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은 만큼 중국측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하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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