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호사장 “김선일씨 납치-살해는 동일단체 소행”

  • 입력 2004년 7월 1일 18시 58분


이라크에서 살해된 김선일씨가 다니던 가나무역의 김천호 사장은 1일 “김씨 납치사실을 한국대사관에 알리면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 생각해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 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경호업체 Y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무장단체의 우호적이던 태도는 김씨 납치사실이 방송에 보도된 뒤 급속히 악화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씨 피랍과 살해는 동일 단체의 소행으로 알고 있다”며 “가나무역은 종교단체와는 관계가 없으며 미국과의 연계설도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대사관에 피랍사실 안 알렸나.

“대사관은 4차례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 때까지는 김씨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불분명해 통보할 수 없었고 이후 방문에서는 알리지 않는 것이 (김씨의) 신변보호에 더 이롭다는 말을 들어 그렇게 했다.”

―5월 31일 이후 10일 동안 왜 실종 사실도 안 알렸나.

“그때까지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김씨 소재를 파악하고 싶었다. 우리가 한창 찾으러 다닐 때였다. 이 과정에서 팔루자 주민들로부터 김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납치됐다는 정보를 얻어 납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1일 감사원에 조사를 받으러 출두하기에 앞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선일씨 피살사건을 혼자 해결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김 사장을 상대로 진상조사를 벌일 예정이다.-원대연기자

―‘미국 육공군 복지기관(AAFES)’에는 피랍사실을 왜 알렸나.

“알린 게 아니라 실종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통보했다. 그쪽에서 도와주기 힘들다는 답변을 했다. 부대 내 민간인 군속에게 알렸다. 이외에는 미군에게서 어떤 협조도 받지 않았다.”

―협상은 어땠나.

“상황이 급변한 이유가 파병과 연관이 있다고 협상에 나섰던 현지법인 변호사에게 들었다. 우리도 아주 당황했다. 19일경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랍 시기를 당초 6월 17일이라고 했다가 뒤늦게 5월 31일이라고 말을 바꾸었는데….

“방송이 나오자 무척 당황스러웠다. 김씨 피랍의 중간과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임의적으로 말했다가 오해가 생긴 것 같다.”

―현지 교민 사이에서는 6월 초부터 피랍 소문이 돌았다는데….

“우리가 대사관에 말한 적도 없고 소문도 없었다. 이라크에는 교민이 없다. 있어 봐야 우리 직원과 대사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직원들뿐이다. 이 사람들이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장단체가 무엇을 요구했나.

“무장단체는 우리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 터키인들을 납치했을 때처럼 미군 군납 중단을 요구한 적도 없다.”

―협상 조건이 없었나.

“없었다. 처음부터 납치의 표적이 한국인이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납치 단체와 살해 단체가 동일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접촉 과정에서 협상 단체가 바뀌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이에 앞서 김 사장은 이날 오전 2시40분경 부산 동구 범일6동 김씨의 본가에 도착해 유족들을 만나려 했으나 유족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실패했다. 결국 김 사장은 15분 만에 발길을 영락공원에 있는 김씨의 묘소로 돌렸으며, 3분여간 기도를 올린 뒤 서울로 향했다.

김 사장은 취재진에게 “동생 같았던 선일이가 불행한 일을 당해 가슴이 아프다. 가족과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김 사장 일행은 BMW 승용차 2대 등 고급승용차를 이용해 이동했으며 이는 경호업체에서 임대한 렌터카로 밝혀졌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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