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海충돌 방지 합의]밀고 당기고 21시간 마라톤 협상

  • 입력 2004년 6월 5일 00시 03분


‘무박 2일’의 21시간 협상. 두 차례 전체회의와 다섯 차례 실무대표 접촉에서 벌어진 팽팽한 줄다리기. 오전 2시반에야 받아 앉은 저녁상.

제2차 남북장성급회담이 남북 대표단에 안겨준 이런 역경도 그들의 ‘군인 정신’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군사신뢰 구축에 기여하자.” 3일 오전 10시 첫 전체회의는 남측 수석대표인 박정화 해군 준장과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인민무력부 소장이 이런 덕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 좋게 시작됐지만 45분 만에 끝났다. 양측은 각각 전략회의를 가진 뒤 오전 11시35분부터 남측 문성묵 대령과 북측 유영철 대좌가 주도하는 실무대표 접촉을 시작해 낮 12시45분까지 계속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회담장 안팎에서 “전망이 밝지 않다. 최대 쟁점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합의가 쉽지 않겠다”는 우울한 전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남북 대표단은 문배주를 반주 삼아 ‘늦은 점심’을 하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 뒤 오후 3시경 2차 실무대표 접촉을 가졌으나 25분 만에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헤어졌다. 오후 9시까지 양측은 각자의 호텔방에서 협상 대신 서울 및 평양 본부와 긴 협의를 벌였다.

그 사이 북측 대표단의 당초 복귀시간(오후 5시)이 지나갔고, 이 무렵 남측 대변인인 문 대령은 “성과가 없다. 다음 회담 일정 문제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해 비관론을 더욱 짙게 했다.

○…그러나 오후 9시10분부터 약 45분간 진행된 3차 실무대표 접촉에서 반전의 조짐이 감지됐다. 서해상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남측 대표단의 4대 방안에 대해 오전 내내 냉담하던 북측 대표단이 자신들의 카드를 내보이며 ‘타협’ 의지를 슬쩍 비친 것.

다시 서울과 평양의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훈령을 받은 양측 실무대표가 마주앉은 것은 4일 오전 1시10분경. 북측 대표단이 내부 회의를 이유로 저녁식사를 거부해 남측 대표단도 함께 굶는 ‘동포애’를 발휘한 상태였다. 이 접촉을 끝낸 오전 2시반 양측은 갈비찜과 생선구이로 ‘저녁밥’ 대신 ‘새벽밥’을 들어야 했다. 이어 오전 2시45분 5차 실무대표 접촉→오전 5시 사실상 합의→오전 7시 전체회의에서 합의안 서명 등을 거치며 밤을 꼬박 새웠다.

남측 박 수석대표가 마지막 인사로 “다음에 또 만나야지”라며 반말을 건네자, 북측 안 수석대표도 “왜 또만 만나나. 계속 만나야지”라며 역시 반말로 대꾸했다.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서 평소엔 서로 총부리를 겨눴을 두 사람이 어느새 격의 없는 친구가 돼 있었다.

속초=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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