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민법 개정안 확정]‘보증채무 평생 족쇄’ 없앤다

  • 입력 2004년 6월 2일 23시 19분


코멘트
《법무부가 2일 확정한 민법 개정안은 국민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재산편의 내용을 대폭 고친 것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 의결을 거쳐 시행되면 국민의 실생활 전반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민법이 개정되면 이와 관련된 여러 법률의 개정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 달라지는 점은

▽성인 연령=현행 20세에서 19세로 낮아진다. 법무부는 청소년의 성숙도와 외국의 입법례 등을 두루 고려해 성인 연령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민법상 성년이 되면 남녀 모두 부모의 동의 없이 자신의 뜻대로 결혼할 수 있다. 또 매매 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신용카드도 만들 수 있다.

▽보증제도=보증제도도 대폭 바뀌게 된다. 현재나 미래의 채무에 대해 기간 제한 없이 평생 보증하는 ‘포괄근저당권’이 금지된다. 또 채무자와 근저당 설정권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강화된다.

현행 민법에서는 구두(말)로도 보증할 수 있으나 개정안은 반드시 보증인의 기명날인이나 서명이 있고 책임액수가 명시되어야 보증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했다. 멋모르고 보증을 잘못서 낭패를 당하는 일을 가급적 막기 위한 것이다.

개정안은 또 채권자는 주 채무자(실제 돈을 빌린 사람)가 3개월 이상 채무를 불이행한 경우 채무 불이행 상황을 보증인에게 알리도록 했다. 이를 통보하지 않았을 경우 보증인이 이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했다.

▽법인 설립=법인 설립도 쉬워진다. 법인 설립시 주무관청이 시혜적, 예외적으로 허가해주도록 하는 ‘허가주의’ 대신 기준에 맞춰서 설립을 신청하면 주무관청이 허가해 주도록 하는 ‘인가주의’가 도입된다.

▽여행 계약=여행 계약에 관한 규정이 신설됐다. 이 규정에 따르면 여행계약 내용과 실제 여행 시 서비스 내용이 다르면 여행객이 여행계약 자체를 해지하거나 여행 대금 삭감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민법에 여행 관련 규정이 없어 여행사 약관이 법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건물의 하자와 철거=완공된 건물에 ‘중대한 하자’가 있을 경우 현행 민법은 결함을 고쳐달라는 보수(補修) 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건물 철거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현행 민법은 이웃이 자기 땅을 침범해 지은 건물에 대해 기간 제한 없이 아무 때나 자기 땅을 넘어선 부분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토지 소유자가 고액 보상금을 받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었다.

개정안은 이웃이 과실 없이 경계를 침범한 경우 토지 소유자측에서 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철거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실종선고 유예 기간=항공기 추락이나 선박 침몰로 탑승객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법원이 상속인 등 이해관계인의 청구에 따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 ‘실종선고’를 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종전 1년에서 6개월로 줄여 권리관계를 조속히 확정할 수 있도록 했다.

■ 앞으로의 절차

▽관련법 개정 뒤따를 듯=민법의 성년 기준이 달라지면 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다른 법률도 잇따라 개정될 전망이다.

우선 만 20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을 주도록 한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으로 만 19세는 65만명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선거연령을 낮추는 문제에 대해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여야에 따라 연령층의 지지 성향이 다른 만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또 19세는 미성년자로 분류돼 술집을 출입하거나 담배를 살 수 없었고, 공인노무사나 변리사 등 자격증 시험도 치를 수 없었다. 민법이 개정되면 관련법도 잇따라 개정될 전망이다. 현행법상 20세부터 가능한 국적취득이나 귀화도 법 개정과 함께 19세로 대상 연령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남은 절차=법무부는 개정안을 이달 입법 예고하고 법제처로 넘기게 된다. 법제처의 검토가 끝난 뒤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면 이 개정안은 정부안으로 확정된다.

정부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와 본회의 통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1,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법무부 민법개정 특별분과위원회 이영준(李英俊·동국대 교수) 부위원장은 “법무부 안이 마련됐더라도 국회 논의 등 거쳐야 할 과정이 많아 일부 내용이 바뀔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포관근저당…모든 거래 일괄 담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채권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사이에 발생하는 현재 또는 장래의 모든 채권을 하나의 근저당권으로 일괄해 담보하는 제도. 거래마다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것이나 금융기관 등이 채권담보를 강화하기 위해 남용했던 측면이 있다.

▼포괄근보증…보증인이 채무 평생책임▼

보증을 선 금액뿐 아니라 채무자의 미래 거래까지 모두 평생토록 책임지는 제도. 회사 대표나 임원은 포괄근보증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상례였다. 채무자가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않고 도망갈 경우 포괄근보증을 선 보증인은 원금과 연체이자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에서 빌린 채무까지 갚아야 한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