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1년만에 꼬여버린 韓美관계

  • 입력 2004년 5월 23일 18시 44분


지난해 5월 14일부터 올해 5월 14일까지의 1년은 한미동맹의 질적 전환이 이뤄진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4일 워싱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 대통령이 자주적 대미 외교를 표방하고 나서 한미관계에 이미 파고가 높아지던 때였지만 우려와는 달리 정상회담은 비교적 무난히 끝났다.

당시 공동성명에서 양 정상은 “한강 이북 미군기지의 재배치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정치 경제 안보 상황을 신중히 고려하여 추진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고 밝혀 안보에 대한 우려를 진정시켰다.

그로부터 꼭 1년 뒤인 14일 미국은 주한 미2사단 일부 병력을 이라크로 차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한국에 통고했다. 공교롭게도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해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돌아온 날이었다.

이는 1년 사이에 한미동맹이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사전협의 상대가 아니라 일방적 통고의 대상이 돼 버린 것이다.

이제 한미동맹 관계는 변했다. 상대를 보는 양국의 눈길과 기대치가 예전 같지 않은 마당에 종전의 ‘혈맹’을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현실로 인정하고 이를 어떤 방향으로 관리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과 미국은 주요 현안에 대한 현저한 인식차를 동맹답게 조절할 수 있을까.

한미 갈등의 뿌리인 북한 핵문제의 경우 미국은 한국이 단호히 대처하지 않고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의 입장을 가급적 배려하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이 이라크 추가 파병을 약속해 놓고서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대(對)테러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엔 동맹국이 전시(戰時) 지원을 미루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로 비친다. 반면 한국 정부는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크게 우려하고 있고 국민은 각종 미군 범죄와 이라크 포로 학대 등에서 드러난 미국의 오만함에 고개를 젓는다.

한국의 반미감정은 ‘밑바닥 정서’이지만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인식은 행정부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설령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물론 당장 한반도에 변란이 생길 것으로 우려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꼬여만 가는 한미관계를 풀지 못하면 결국 안정과 개혁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사랑이 그렇듯 동맹관계도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깨지기 마련이다. 미국이 혹시 한국에 대해 ‘너흰 아니야’라고 선을 그으려는 것은 아닌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외교안보 라인의 한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 한미관계를 우려하는 외교안보 분야의 기자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다시 오더라도 위기라고 인정할 수 없다. 위기를 인정하면 국민의 불안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위기 경보는 언론의 몫이다. 정부와 언론의 역할분담은 한미관계에도 필요하다.”

그는 이번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