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정책 제동]개혁서 民生으로 코드 변경?

  • 입력 2004년 5월 12일 18시 45분


재정경제부와 열린우리당이 12일 당정협의를 갖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대기업집단(그룹) 소속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방침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은 여권과 정부 내 이른바 ‘개혁파’가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게 추진해왔던 점에 비춰 경제현안을 둘러싼 ‘노선 갈등’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 현실경제 중시로 가나=열린우리당이 당초의 입장을 바꿔 공정위의 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방침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은 경제계의 강력한 반발과 이에 따른 경제 악영향을 감안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열린우리당은 지난주 공정위와의 당정협의에서는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에서는 홍재형(洪在馨) 신임 정책위의장이 경제관료 출신인 만큼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면서 개혁을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홍 의장이 당정협의에서 “그렇게 중요한 정책을 펴면서 어떻게 정부간에 제대로 조율을 거치지 않고 발표를 하느냐. 당과도 협의를 했다고 하지만 세밀하게 한 것은 아니다. 당정이 다시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정부의 경제상황 인식이 너무 낙관적이다. 당에서 재래시장 등 현장에 내려가 보면 경기가 죽었다고 난리를 치는데 정부는 지표에만 매달려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여당이 현재 상황에서는 ‘개혁보다는 민생경제를 챙기고 경기회복에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은 이날 당정협의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강력히 요구, 재경부로부터 ‘6월 초까지는 추경 규모와 시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경제정책을 둘러싼 정부정책 혼선=4·15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경제정책기조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경제회생’에 맞춰져 있었다.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강신호(姜信浩)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따로 만나 투자활성화를 주문했고, 기업의 요구사항을 듣겠다며 아예 재경부 핵심과장을 전경련에 1년을 기한으로 파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확보한 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혁성향의 학자 출신인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은 재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금융계열사 의결권제한을 뼈대로 하는 공정거래법개정안을 밀어붙였다.

또 교수 출신인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대우종합기계 매각과정에서 노조와 사원들로 구성된 ‘대우종합기계 지분매각 공동대책위원회’의 입찰참여를 측면 지원했다. 이에 대해 이헌재 부총리는 “(노조에 대한) 차별도, 특혜도 없다”고 천명하는 등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주요 경제현안에 대해 정부 부처에서 ‘코드’가 다른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혼선이 빚어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많이 제기되기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정부 여당이 앞으로 경제정책기조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우선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의 기조에는 여전히 ‘개혁’과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홍재형 정책위의장 뜻대로 당 정책이 결정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에 따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경제정책방향과 관련해 보다 분명한 방식으로 정리해주지 않는 한 앞으로도 여권 및 정부에서는 ‘성장 대 분배’와 같은 다소 대립되는 개념을 놓고 노선차이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왼쪽)이 12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와 홍재형 정책위의장과의 당정협의를 갖던 도중 심각한 표정에 잠겨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날 이 부총리에게 최근의 경기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안이하다고 질타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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