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동포 라면 맛볼까…용천참사 구호품으로 대량반입

  • 입력 2004년 4월 30일 18시 40분


“이번엔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라면 맛을 보게 될까.”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피해 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물품과 함께 라면이 대거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농반진반(弄半眞半) 이런 얘기가 나돌았다.

지난달 28일 남포항에 도착한 한광호가 컵라면 10만개를 가져갔고, 27일엔 민간구호단체 ‘굿네이버스’가 10만달러 상당의 라면을 단둥(丹東)으로 보냈다. 천진엘림한인교회가 보낸 라면 2550박스도 단둥 보세창구에 보관돼 있다.

“북에서 먹던 강냉이 국수처럼 생각하고 푹 삶아 먹었는데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 아직도 그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대사관에 진입한 뒤 아이들이 밥을 놔두고 컵라면만 한 끼에 2, 3개씩 먹어대자 대사관 사람들이 의아해 하더군요.”

탈북자들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처음 맛본 한국 라면의 맛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극찬한다. 그만큼 한국 라면은 북한 주민들의 입맛에도 딱 맞다.

하지만 북한에서 남한 라면을 먹어봤다는 탈북자는 없다. 외화상점에서 파는 일본 라면이나 중국에서 친척들이 가져온 중국 라면을 먹었다는 증언만 있을 뿐이다.

라면이 처음 북한에 들어간 것은 식량난이 극심했던 1997년 6월. 기독교단체들이 지원한 ‘쇠고기라면’ 15만박스(450만개)가 흥남항과 남포항을 통해 들어갔다.

당시 북한 관계자들은 한국 기자에게 “거기서 보낸 라면을 먹어봤는데 그렇게 맛좋은 식품도 있나 하고 놀랐다”면서 “남조선 사람들은 참 행복하겠다”고 실토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당시 흥남에 살던 주민들은 라면을 먹어보기는커녕 한국에서 라면을 보내왔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한국 생활의 질이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군수물자로 비축했을 것”이라는 추측들이다.

하지만 이번은 그때와 다를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이주일씨(42)는 “국제기구의 눈을 피해 그 많은 라면을 감추기는 힘들 것”이라며 “용천 사람들이 한국의 라면을 먹어보는 첫 북한 주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2년 전 한국에 온 탈북자 박모씨(29)는 “코카콜라와 청바지가 자본주의 선발대라지만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라면은 북한 주민에게 더 큰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