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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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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한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외교안보 분야의 공약들이다.
엊그제 정계를 은퇴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말처럼 ‘세상이 바뀌었다’. 민노당의 눈으로 보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정부는 ‘전범’이고, 미국은 배격해야 마땅한 대상이다. 자주국방 예산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국방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가로채는 ‘파렴치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신념’을 가진 이들이 10명이나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민노당뿐이 아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듯이 17대 총선 당선자들의 진보적 성향이 부쩍 강화됐다. 본보가 지역구 초선 당선자 13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대북유화정책을 지지한 비율이 무려 94.9%로 나왔다(19일자 보도).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진보로 기울고 있다는 징표다.
이 같은 진보 바람은 외교안보 분야에도 곧 불어 닥칠 것이다. 당장 6월로 예정된 이라크 추가 파병부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대미(對美) 관계가 조정받을 수 있고, 남북경협 및 대북 지원에도 가속도가 붙을 여지가 커졌다. 일각에서는 17대 총선의 최대 수혜자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외교안보 분야를 오래 담당하면 보수 성향이 강화된다는 속설 때문일까? 많은 전문가는 이런 분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외교안보전략은 단 1%의 국가 위해(危害)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지극히 냉정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안보정책’은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다.
진보세력의 주장대로 이라크 파병을 철회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결정이 일각의 ‘도덕적 만족감’을 충족시켜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국익의 대차대조표는 엄청난 손실로 나타날 소지가 크다. 주한미군에 이 땅에서 나가줄 것과 한미동맹 개폐를 요구한다면? 한동안 우리의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후 한국은 패권 다툼이 치열한 동북아에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경제적 곤경에 빠진 북한을 더 많이 돕자? 그 선의는 좋다고 하자.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이 핵무기와 미사일로 되돌아올지 여부조차 아직 모르고 있지 않은가.
진보세력의 약진은 우리 사회가 과거의 보수 지배 구도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우려할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외교안보 분야에 관한 한 과도한 진보는 조정이 불가피하다. 급진 진보의 이상주의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선의 구도는 보수와 진보가 적절하게 타협하는 경우다. 진보는 보수의 현실감각을 하루빨리 익히고, 보수는 진보의 도움으로 과거의 묵은 때를 씻어낼 때 보혁의 상생(相生)은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보적 안보정책’이라는 말의 어색함도 가시지 않을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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