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충돌]변호사출신 대통령, 非법률적 변론

  • 입력 2004년 3월 11일 19시 03분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특별 기자회견의 상당부분을 측근들과 친형 건평(健平)씨, 자신의 선거운동 책임자들에 대한 변호에 할애해 ‘변호사 노무현’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그의 주장이 법적 근거가 빈약한 “비(非)법률적” 변론이라고 지적한다.

노 대통령은 건평씨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건평씨가 돈을 돌려줬고 청탁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자신이 건평씨의 청탁을 거절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어 “너그럽게” 봐달라며 변호했다.

그러나 건평씨에게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죄는 돈을 돌려줬는지, 청탁이 이뤄졌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성립하는 범죄다. 법이 보호하려는 법익(法益)이 ‘직무의 공정성에 대한 일반의 신뢰’이기 때문에 ‘청탁과 함께 돈을 받는 순간’ 그 신뢰는 깨지고 따라서 범죄가 성립한다. 판례는 하루 만에 돌려준 경우에도 유죄를 인정한다. 건평씨는 3개월 만에 돈을 돌려줬다.

노 대통령은 돈을 받은 사람보다 돈을 준 사람이 더 문제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나 알선수재의 경우 돈을 준 사람에 대한 처벌조항은 없으며 뇌물 관련 범죄에서도 돈을 받은 사람이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법의 취지나 정신은 돈을 받은 쪽에 훨씬 더 무거운 책임을 묻고 있는데, 노 대통령은 거꾸로 얘기한 셈.

노 대통령은 또 측근 안희정씨가 불법 대선자금 중 2억원을 새 집을 사는 데 사용한 뒤 옛 집을 팔아 채워 넣었다는 것을 근거로 “착복의 고의가 없었다”며 변호했다. 그러나 판례는 일시 유용(流用)의 경우에도 “지체 없이 채워 넣을 의사”가 없으면 착복(불법영득·不法領得)의 의사를 인정한다.

노 대통령은 이 밖에 이상수(李相洙·열린우리당·구속) 의원 등이 수십억원의 대선자금을 관리하면서 한 푼도 유용하지 않았다며 신뢰를 표시했지만 ‘불법 대선자금 모금’이라는 범죄는 법률적으로 개인적 유용 여부와 관계가 없다. 1000억원대의 안기부 예산을 빼내 선거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차장도 ‘한 푼’도 유용하지 않았지만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등 법률적으로 아무런 동정도 받지 못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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