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인망 훑고 간 바다 뒤지는 격"…수사 제자리-답답한 특검

  • 입력 2004년 2월 9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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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 모두 열심히 하고 있으나 화끈한 기사거리를 제공하지 못해 답답하다.”(2일 김진흥·金鎭興 특검)

지난달 6일 출범한 김진흥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팀이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달 넘게 50여곳과 100계좌 이상, 특히 청와대 계좌까지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3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지만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기 때문.

오히려 썬앤문그룹측의 ‘95억원 제공설’이나 청주 K나이트클럽 실소유주 이원호씨의 ‘50억원 제공설’ 등에 대해 ‘면죄부’만 주게 될 판이다.

▽왜 고전하나=이는 무엇보다 검찰이 이미 철저한 수사를 통해 샅샅이 뒤졌기 때문. 검찰은 특검 시작 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특검을 해도 새롭게 나오는 사안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저인망에서 빠져나간 고기를 잡겠다고 주변 바다를 다 뒤지는 격”이라는 양승천(梁承千) 특검보의 말(2일)은 특검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사실들을 대거 밝혀냈던 지난해 대북송금 의혹사건 특검은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은 사안을 수사했었고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검찰이 축소수사를 하는 바람에 성과가 많았다.

이번 특검법이 수사 대상을 특정인의 비리 의혹으로 명시해 수사 확대를 어렵게 하거나, 반대로 대상이 너무 애매한 것도 수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특검과 특검보들이 브리핑에서 밝힌 ‘애매한 부분’은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비리 의혹과 관련한 수사대상 기업체의 범위 △썬앤문그룹의 감세 청탁 의혹이 수사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 △안희정(安熙正)씨의 수사대상 포함 여부 등이다.

김 특검은 이와 관련, 브리핑에서 “특검법을 서둘러 만들다 보니까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말한 바 있다.

▽피곤한 특검팀=김 특검은 현재 눈의 실핏줄이 터져 병원에 다니고 있다. 수사관들은 주말과 휴일은 물론 설 연휴에도 대부분 출근해 기록 검토 작업을 벌였다.

특히 이달 초 “2월 중순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김 특검이 공언한 뒤로 특검팀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특검보와 수사관들이 밤12시 넘어 퇴근하는 일도 흔하다.

한 파견변호사는 토요일인 7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오전 10시까지만 출근하면 됐는데 여기는 너무 일찍 출근하고 너무 늦게 퇴근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특검팀을 더욱 피곤하게 하는 것은 ‘검찰 수사도 버텼는데 이번에도 수사 기한만 지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관련자들의 태도. 더구나 이들은 그동안 검찰 수사 등을 거치면서 관련 자료와 증거도 철저히 파기하거나 은폐한 상태다.

이광재(李光宰) 전 대통령국정상황실장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이우승(李愚昇) 특검보는 “관련자들이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했던 말만 되풀이한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반면 검찰 수사에 이어 또다시 소환 조사를 받고 있는 수사 대상자들도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한다. 썬앤문그룹의 한 과장은 9일 “직원들이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특검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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