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北 공증' 효력 첫 인정

  • 입력 2004년 1월 24일 15시 07분


북한 기관의 공증이 국내 법원에서 처음으로 인정됐다.

`북한판 동의보감'의 출판권 침해 여부를 놓고 3년간 벌어진 소송 끝에 북한 공증기관이 제시한 공증서의 효력을 서울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조관행 부장판사)가 인정하는 판결을 24일 내렸다.

이번 판결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의 결론을 뒤집은 것으로, 북한측과의 계약 진위를 놓고 진행 중인 여타 사건에서도 북한 공증기관의 공증서가 유력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주목된다.

Y출판사 사장인 이모씨(52)는 93년 12월 중국 선양(瀋陽)시 `조선족 문화예술관' 부관장인 윤모씨와 1만 달러에 북한판 동의보감을 15년간 남한에서 출판할 수 있는 계약을 한 뒤 94년 5월 책을 냈다.

윤씨는 북한판 동의보감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북한 내 `과학백과사전 종합출판사'로부터 이씨와의 계약권을 위임받은 대리인.

그러나 B출판사를 운영하던 김모씨가 99년 12월 국내 유수의 한의학과 교수들이 국역위원으로 참가해 동의보감 대역본을 출판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 동의보감 대역본은 이씨가 펴낸 동의보감과 번역 등이 95% 가량 흡사하고 오자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베껴 쓴 게 아니냐'는 논란을 빚었다.

검찰은 2000년 12월 "이씨가 북한에서 출판권을 위임받았다는 입증을 못해 고소적격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고, 이씨는 곧바로 김씨와 국역위원으로 명기된 한의학 교수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민사소송에서 핵심 쟁점은 이씨가 중국 선양의 조선족 문화예술관 부관장인 윤씨와 맺은 출판권 계약을 유효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 여부.

이때 제출된 것이 북한의 공증기관인 `평양시 공증소'가 2000년 9월25일자로 공증한 확인서로, 확인서에는 이씨 주장처럼 북한판 동의보감의 저작권자는 과학백과사전 종합출판사이며 대리권은 선양의 윤씨가 갖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원은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 사실조회를 한 결과 "서적의 대외 판매 및 출판권 설정은 주로 조선출판물 수출입사가 담당하지만 출판사가 직접 저작권 관련계약을 하는 경우도 다수 있으며, 평양시공증소의 확인서가 위조된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2부는 "이씨의 출판권 계약이 유효하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김씨뿐만 아니라 국역위원으로 참가한 한의학과 교수들 역시 배상책임이 있으므로 도합 7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디지털뉴스팀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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