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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월 8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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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4시20분경. 박관용 국회의장은 “더 이상 직무유기는 못한다”며 찬반토론을 선언했다. 이어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경북 김천) 의원이 반대토론을 위해 단상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농촌 지역구 의원 40여명이 일제히 몰려나와 단상을 점거하고 마이크를 끄는 등 실력 저지에 나섰다.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경기 여주) 이상배(李相培·경북 상주), 민주당 이정일(李正一·전남 해남-진도) 의원 등이 박 의장에게 “대통령이 찾아 왔다고 국회가 바로 처리해 주냐”고 따졌다. 이에 박 의장은 “왜 이리 비굴하게 구느냐. 내가 권위주의 시절 의장이냐. 왜 나를 못 믿느냐. 대통령이 왔다고 억지로 통과시킬 것으로 보느냐. 행정부와 국회가 협의할 것은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단상을 에워싼 농촌 지역구 의원들이 계속 버티자 박 의장은 “이런 식으로 한다고 농촌 사정이 나아지느냐. 자꾸 이러면 토론을 종결하고 바로 투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농촌 지역구 의원들은 결국 “찬반토론과 의사진행발언만 해라. 표결은 안 된다”며 1시간여 만에 물러섰다.
오후 5시20분경 시작된 찬반토론에서 임 의원과 한나라당 오세훈(吳世勳) 의원이 각각 반대토론과 찬성토론을 했다. 민주당 김효석(金孝錫·전남 담양-곡성-장성)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정부는 대외신인도 저하를 우려하는데, 칠레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FTA를 파기한 적이 2번이나 있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찬반토론 후 박 의장은 “FTA 비준안 처리를 무한정 늦출 수는 없다. 2월 9일에는 반드시 처리할 것이다”며 “의사진행을 또다시 실력 저지하면 경호권을 발동할 것이다”고 밝히고 산회를 선포했다.
본회의 이전에도 국회는 숨 가쁘게 돌아갔다. 특히 한나라당 농촌 지역구 의원 3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사우나탕에서 함께 목욕을 한 뒤 점심을 같이하며 표결 저지를 위한 전략을 숙의했고, ‘의장 저지조’와 ‘투표함 사수조’를 편성하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총장도 어수선했다. 농촌 지역구 의원들이 일제히 ‘반대 당론’ 결정을 당 지도부에 강력히 요청하는 등 소란을 빚었다.
열린우리당은 ‘찬성 당론’을 정했으나 문석호(文錫鎬·충남 서산-태안) 의원은 “사실상 자유투표”라고 말했다. 의사당 밖도 마찬가지였다.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농민 시위대와 전경버스로 국회 정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친 전경들이 하루 종일 대치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관세 없애고 통관 간소화…95년후 각국 120건 체결▼
▼FTA는…▼
자유무역협정(FTA)은 시장 개방을 통해 두 나라 이상이 단일 시장을 이루는 지역협정이다.
체결국간 무역에서 관세를 없애고 통관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각종 무역 장벽을 없애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품 무역뿐 아니라 투자, 경쟁, 지적재산권, 원산지 규정 등에 대해서도 양국은 단일국가와 같은 수준의 개방을 추구한다.
시장 개방은 두 나라 소비자들에게 보다 싼 값에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해 후생(厚生) 증대를 가져온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일반적 평가다. FTA 체결국끼리는 특혜를 주게 되지만 비(非)체결국에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밖에 없다. FTA 체결국끼리 형성한 경제 블록은 비체결국 입장에서 무역장벽인 셈이다.
다자(多者)간 협정인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추진이 난항을 겪으면서 FTA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FTA 체결 건수는 1947년부터 94년까지 125건에 그쳤으나 95년부터 작년까지 120건에 달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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