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이즈미 신사참배]새해첫날 기습… 계산된 ‘우경화’

  • 입력 2004년 1월 2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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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마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숙제라도 끝낸 듯 후련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야당이 일제히 “총리의 참배는 적절치 않다”며 비판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날 야스쿠니 참배는 2001년 4월 자민당 총재선거 때 고이즈미 총리가 내건 공약의 연장이지만 보수세력의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참배의 포인트는 △새해 첫날 이뤄졌다는 점 △총리 자격의 공식 참배라는 점 △우경화 흐름의 반영이라는 점 등이다. 참배 과정과 배경을 면밀히 짚어보면 고이즈미 총리가 일각의 평가처럼 ‘헨진(變人·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용의주도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월 1일’의 의미=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서는 중국이 한국보다 더 강하게 반대해 왔다. 중국은 2002년 2차 참배 이후 양국 정상간 상호 방문을 거부하고 있다.

새해 첫날 참배를 결행한 것은 중국을 달랠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상대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려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는 것.

일본 언론은 고이즈미 총리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이 본격화되기 전에 참배를 마쳐야 할 필요성도 느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위대 희생자가 생긴 뒤 야스쿠니를 참배하면 ‘군국주의 부활’로 비쳐 파문이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신사 참배가 공론화하는 것을 최대한 피해 보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일본 신문들은 2일자가 휴간이어서 이 소식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방송은 새해 특집을 내보내기에 바빴다.

▽보수 우경화의 결정판=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나 행동을 해놓고 시간이 지나면 기정사실화하는 ‘고이즈미식 치고 빠지기’는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처음 두 번은 ‘개인 자격’을 내세우며 참배했던 그는 지난해에는 “총리로서 참배했다”고 공언했고 이번에는 방명록에 총리 직책을 적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국내 정치용의 성격도 짙다.

지난해 11월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면 정권 존립까지 위협받을 처지. 최근의 우경화 및 군사대국화 흐름에 편승해 보수세력의 표를 끌어모으는 데는 야스쿠니 참배만큼 좋은 재료가 없다.

그가 당당하게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 것은 적어도 국민 중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총리의 참배가 연례화되면서 일본에서는 일종의 정치 이벤트 정도로 받아들이는 풍조가 퍼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집권 중 최대 치적은 후임 총리가 부담 없이 야스쿠니 신사를 찾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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