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시민혁명’을 말했는가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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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어젯밤 당선 1주년을 맞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을 비롯한 친노(親盧) 단체들이 주최한 ‘리멤버(Remember) 1219’ 행사에 참석해 “시민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실로 충격적이다. 그는 ‘시민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국정혼란과 그에 따른 국민의 고통과 좌절을 ‘시민혁명’의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한 이 나라의 내일은 참으로 불안하고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적 요구는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시대의 변화를 수렴해 이 나라를 질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는 결코 ‘시민혁명’의 요구가 아니다. 법치(法治)와 시스템의 정치로 참다운 변화가 국민의 동의하에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국민통합은커녕 배타적 ‘코드 의식’으로 국민의 에너지를 분열시켰다. 김수환 추기경이 지적했듯이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과만 함께하면 뭔가 되지 않겠느냐는 닫힌 사고로 새로운 시대의 변화 요구를 포용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특권과 기득권으로, 반칙으로 이 세상을 주무르던 사람들의 돈과 조직, 그리고 막강한 언론의 힘을 물리치고 우리는 승리했다”고 말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의 절반을 ‘물리친 상대’로 보는 한 통합의 리더십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노 대통령이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에 대해 ‘상대의 떡밥’ 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 그물에 고기가 몰려가는 것이 보여’ 어쩔 수 없이 ‘떡밥’의 불법을 저질렀다는 얘기인데 노 정부가 내세웠던 도덕성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노 대통령은 다수 국민이 과연 ‘시민혁명’이 계속되기를 바라는지, 그것이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겸허한 자세로 물어야 한다. 그리고 민의(民意)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불법 대선자금 총액이 한나라당의 10% 이하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과는 비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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