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총리 ‘변신의 계절’… 조기내각개편 등 소신 쏟아내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51분


최근 정국 현안에 관해 소신을 피력하는 등 종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끄는 고건 국무총리. -동아일보 자료사진
최근 정국 현안에 관해 소신을 피력하는 등 종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끄는 고건 국무총리. -동아일보 자료사진
‘무색무취’로 불리고 있는 고건(高建) 국무총리가 최근 국회 답변을 통해 전에 없이 강한 톤으로 정국 및 내각과 관련된 소신을 잇달아 피력하고 있어 ‘색깔내기’를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고 총리는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재신임 정국을 초래한 것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책임이냐, 국회와 언론의 책임이냐”는 한나라당 박종근(朴鍾根) 의원의 질문에 “노 대통령과 (대통령의) 측근, 정부의 책임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이에 앞서 고 총리는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대통령에게 내각 조기개편을 건의할 용의가 있다” “노 대통령 친서가 미국에 간 것으로 안다”는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민감한 발언을 주저 없이 쏟아냈다.

또 이날 민주당 김경재(金景梓) 의원이 “노 대통령이 불신임되면 국정공백을 메울 자신이 있느냐”고 거듭 추궁하자 “내 생각이 있다. 불신임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맞받아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고 총리는 이에 앞서 1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언론이 이대로 가면 1년 후엔 무력화할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의견을 묻는 질문에 “나라면 그런 표현은 쓰지 않겠다”고 직설적으로 답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송두율(宋斗律)씨 사건에 대한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적절치 않았고 공식석상에서 질책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들은 ‘고 총리의 답변은 듣지 않고도 쓸 수 있다’는 평을 들을 만큼 총리실측이 서면준비한 원론적 답변을 주로 읽어온 그의 스타일에 비추어 매우 이례적이다.

그의 이런 행보는 다양한 관측을 낳고 있다.

우선 재신임 정국을 맞아 ‘책임총리’의 위상에 걸맞게 적극적인 국정장악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그는 또 대통령이 재신임을 선언한 10일 이후 연일 7건 안팎의 빡빡한 일정을 강행하고 있다. 국회의장단 국정설명회, 대국민담화 발표, 민생경제협의회 신설 등도 그런 일정의 일환.

총리실 관계자는 “고 총리에게 국정안정을 주도해 달라고 주문하는 분들이 무척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총리도 재신임 정국이 어떻게든 속히 마무리돼야 국민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고 총리가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자신감 있는 국정운영을 통해 활동반경을 넓혀가며 ‘이미지 업그레이드’를 꾀하고 있다는 관측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 총리가 재신임 정국을 자신의 약점으로 지목돼온 과감성과 결단력을 보완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총리실의 다른 관계자는 “고 총리는 절대 지켜야 할 선을 넘은 적은 없다. 그는 수십년의 관료생활에서 체화(體化)된 신중함과 2인자의 처신을 완벽히 아는 사람이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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