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노사모’ 정치인가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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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 다음 날 광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에게 친필 서한을 보낸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측근의 비리 의혹으로 도덕성이 훼손돼 겸허하게 재신임을 묻는다는 대통령이 즉시 우군(友軍)에게 지원요청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강물은 굽이쳐 흐르지만 결국 바다로 갑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가고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서한 내용도 그런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노사모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역사에 대한 대통령의 고뇌와 신념이 절절히 배어 있는 글로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노짱의 마음’이라고 화답하고 나섰다. 배우 명계남씨도 “자랑스럽게 홍위병 신고합니다. 즐겁고 신나게 그를 사랑한 책무를 다하겠습니다”며 복귀를 선언했다. 대통령이 노사모를 흔들어 깨운 셈이다.

우리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재신임 정국 속에서 대통령과 노사모의 관계가 이렇게 다시 엮어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난번 대선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노사모는 여전히 논란이 많은 단체다. 정치 참여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비판도 받고 있다. 노사모가 진정한 의미의 시민단체가 되려면 특정 이념과 개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에서 벗어나 사회와 권력에 대한 중립적 감시자가 돼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노사모가 ‘홍위병’을 자임하며 노 대통령 재신임 운동에 뛰어든다면 그 파장은 실로 작지 않을 것이다. 현행 국민투표법이 찬반운동을 허용하고 있기에 더 걱정스럽다. 노사모와는 생각이 다른 많은 단체들이 이를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이고 보면, 나라는 극심한 분열과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 대통령이 노사모를 이용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버려야 하고, 노사모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구한다’는 식의 전위대 의식을 버려야 한다. 재신임 정국을 ‘정치적 내전’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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