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재신임 정국]총선구도 뒤바꿀 ‘다목적 카드’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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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1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재신임의 방법으로 “국민투표가 가장 분명하다”고 밝힌 것은 국민의 직접 심판을 받는 국민투표야말로 ‘재신임 카드’의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재신임을 국민투표로 묻는 데에는 법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게 현실 상황이지만, 기왕 정권 전체를 걸고 모험을 감행하는 만큼 국민의 직접 심판을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실하게 보장받는 방안을 택하겠다는 심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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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국민투표는 후보간 대결구도라는 점을 빼고는 방송토론, 방송연설, 인쇄물 배포 등 각종 선거운동 방법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대선을 치르는 데 버금갈 만큼 큰 정치행사다.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위), 민주당의 박상천 대표(가운데), 통합신당의 김원기 주비위원장 등 3당 대표가 12일 기자간담회를 갖거나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며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영수기자

따라서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단일 이슈를 놓고 한판 승부가 벌어져 전 국민의 관심이 한 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방법보다 파괴력이 클 것이라고 청와대는 내다보고 있다.

또한 재신임 국민투표를 내년 총선을 앞둔 1, 2월 중에 실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될 경우 그 결과에 따라서는 내년 총선구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다는 게 청와대측의 기대다. 이런 점에서 국민투표는 다용도의 ‘와일드카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갖는 내년 총선에 승부를 거는 대신,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새로운 심판의 무대를 마련한 데에는 현재의 통합신당으로는 내년 총선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민주당을 탈당한 노 대통령이 통합신당에 입당하든, 내년 총선 때까지 무당적 상태로 국정을 운영하든 어느 경우나 그 자체로 내년 총선정국 돌파의 전환점을 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노 대통령이 직접 내린 듯하다.

노 대통령은 8월 23일 이해성(李海成)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등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한 7명과 만난 자리에서도 “총선은 큰 구도가 중요하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국민투표는 ‘큰 구도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인 셈이다.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받게 될 경우에는 내년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정국 주도권을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총선에서 신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더라도 노 대통령은 재신임 결과를 토대로 국회와의 관계에서 지금보다 훨씬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재신임을 얻지 못하고 하야(下野)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내년 총선의 구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불신임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될 경우 대통령 보궐선거가 총선과 함께 치러질 가능성이 높고, ‘대선 예비후보군’이 많은 신당이 지금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한편 청와대 일각에서는 재신임만을 묻는 국민투표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책임총리제를 전제로 해 지역구도 타파 등 정치개혁안을 연계하는 국민투표 방안을 거론하고 있으나, 재신임 결단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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