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총선자금' 의혹 증폭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39분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측이 13일 2000년 총선자금으로 외부에서 145억원을 조달했다고 밝히고 나섬에 따라 과연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 합법적으로 처리된 것인지를 둘러싸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권씨측과 민주당은 그동안 권씨가 취급한 자금이 민주당에 들어온 적이 없다고 부인해왔다는 점에서 스스로 총선 지원용 외부 자금 조달 사실을 전격 공개하고 나선 배경도 관심이다. 권씨의 폭로에 대해 야당은 즉각 총선자금 전모 공개를 요구하는 등 공세를 펴고 나섰고, 민주당에서도 주류와 비주류간에 총선자금 책임 논란이 벌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45억원이냐, 345억원이냐=

검찰은 이날 현대로부터 20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권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권씨측은 “145억원이 전부”라며 현대 자금 수수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권씨의 변호인인 이석형(李錫炯) 변호사는 “권씨는 문제가 되는 정치자금을 받지 말고 필요하면 빌려서 선거를 치르라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씨에게서 10억원, 그 외 두 명에게서 각각 50억원씩 모두 110억원을 모아 당에 전달했고, 이 중 80%는 당에서 갚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권씨는 개인적으로 빌린 돈 외에 35억원을 주선해 당 후원금으로 입금시키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권씨가 조달한 자금규모에서부터 검찰과 권씨측 사이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씨가 인정한 145억원 중에는 현대측으로부터 받았다고 검찰이 밝힌 200억원 일부가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포함해 현대자금은 145억원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권씨가 주무른 총선자금 규모가 모두 345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45억원의 조달처에 관해서도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권씨측은 145억원의 ‘차입금 및 후원금 중개’ 사실에 대해서는 먼저 이를 공개했으면서도 돈을 대준 ‘전주(錢主)’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변호사는 “기업인은 아니고, 권씨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권씨의 측근인 이훈평(李訓平)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권씨가 돈을 빌린 시점에 대해 “총선이 한창 진행되던 때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권씨가 총선 막판에 투입할 ‘실탄’으로 믿을 만한 지인들에게서 145억원을 급히 조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당 안팎에서는 부동산 재력가인 S씨와 전 의원인 L씨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총선 때 당 후원회장을 지낸 김봉호(金琫鎬) 전 의원이 거명되기도 하지만 김 전 의원측은 “후원회장으로 당 후원금 모금 등에 노력하긴 했지만 김 전 의원이 직접 돈을 빌려줬을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권씨측이 “50억원은 1명으로부터 빌렸다”고 밝힌 대목과 관련해서도 이 같은 거액을 짧은 시간에 현금화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막판 급전의 일부는 대기업의 비자금으로 조달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반환금 출처와 회계처리의 적법성 여부=

총선 때 사무총장을 지낸 김옥두(金玉斗) 의원은 이날 “정상적으로 조달된 당의 자금이므로 일부를 당에서 변제해줬다”며 권씨측의 ‘80억원 반환’ 주장을 뒷받침했으나 반환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다만 김 의원이 “모두가 선거법상의 합법적인 처리 과정을 거쳤다”고 말한 점으로 미루어 국고보조금이나 후원금을 반환금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당의 한 관계자는 “당시 받을 수 있는 후원금 한도액만큼 총선 전에 이미 다 거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차입금’을 변제할 자금이 공식루트를 통해 조달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라며 “기업이나 다른 후원자에게서 자금을 조달해 갚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회계 명세를 누락했을 경우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위반이 되지만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서 법적 처벌은 어려울 것이다”고 설명했다.

▽DJ는 알았나=

김옥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총선 당시 당의 선거자금 조달 등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다”며 권씨 차입금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인지 가능성을 부인했다. 2000년 2월 청와대에서 열린 당직자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이 재정 투명화를 강조하며 일체의 불법 자금을 받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고 당은 이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 김 의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불법 자금을 받지 말고 빌려서 쓰라는 지시를 권씨가 따랐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와 관련해 권씨측이 김 전 대통령의 ‘지시’를 언급한 것은 검찰로 하여금 권씨 수사에 부담을 지우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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