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세제 개혁]부유층 稅부담 대폭 늘리기에 초점

  • 입력 2003년 7월 29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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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29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보고한 ‘재정·세제(稅制)개혁 로드맵’의 핵심 키워드는 현 정부가 자주 강조해온 ‘개혁’과 분권(分權)이다.

재정 운영 과정에 국민 참여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납세자 소송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점과 부동산 보유과세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대폭 강화키로 한 점은 ‘개혁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내용이다.

또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국민연금제도를 대폭 손질하겠다는 것도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압축성장 과정에서 중앙 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돼온 권한을 차츰 지방과 주민들에게 넘길 방침을 밝히는 등 지방분권에 대한 강한 의지도 드러냈다.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기능과 형태를 크게 바꿔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내용 가운데는 위헌(違憲) 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마찰이 예상되는 대목도 적지 않다. 또 개혁이라는 명분 때문에 현실적으로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국가적으로 상당한 코스트(비용)를 치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납세자 소송제 도입▼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도입을 추진키로 한 ‘예산 불법 집행에 대한 시민 감시 및 국민소송제도’는 이른바 ‘납세자 소송제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재정 운영 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일부 시민단체가 계속 주장해 왔다. 2001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돼 ‘납세자 소송에 관한 특별법’이란 이름으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선거공약집에서도 ‘납세자 소송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혔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주요 국정 과제의 하나로 포함시킨 바 있다.

▽어떤 영향을 미치나=이 제도가 도입되면 직접 피해를 보지 않은 일반 국민이라 하더라도 법률상 원고(原告)가 돼 잘못된 예산 집행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현재는 이해(利害)관계가 없는 국민이 불법 예산 집행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 원고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 당한다.

만약 이 제도가 도입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이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법적으로 정식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재정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납세자 소송에서 국민이 승소하면 법원의 판결에 따라 진행 중인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다. 이미 끝난 사업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해당 공무원이나 기업이 피해 금액을 국가에 내야 한다.

예산을 집행한 공무원 개인이나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묻는 만큼 강력한 감시장치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는 국가가 공무원이나 기업으로부터 환수한 금액 가운데 15∼30%를 소송 제기자에게 보상금 형태로 지급하고 있다.

이 제도 도입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인 ‘함께 하는 시민행동’의 정창수(鄭昌洙) 예산감시팀장은 “납세자 소송제도는 예산 낭비에 대한 책임성과 투명성을 크게 강화시킬 것”이라며 “납세자의 권리 찾기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부작용은 없나=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현재 각종 국민제안, 민원제도 등을 통해 잘못된 예산 집행에 대해 국민이 정부에 건의할 수 있고 정부 내부에서도 감사원 등이 감시를 하고 있는데 중복 감시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제도 도입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와 마찬가지로 소송 남발에 따른 부작용이다. 보상금을 바라고 마구잡이로 소송이 들어왔을 경우 ‘행정 마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획예산처 예산제도과 우병렬(禹炳烈) 서기관은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소송의 대상, 소송 당사자의 범위 등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있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부동산 보유세제 개편▼

재산세율 체계
과세표준재산세율
1200만원이하0.3%
1200만∼1600만원3만6000원+1200만원 초과금액의 0.5%
1600만∼2200만원5만6000원+1600만원 초과금액의 1%
2200만∼3000만원11만6000원+2200만원 초과금액의 3%
3000만∼4000만원35만6000원+3000만원 초과금액의 5%
4000만원초과85만6000원+4000만원 초과금액의 7%
자료:서울시 웹사이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재산세 등 보유과세에 관해 2가지 개편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지방자치단체의 재원(財源)으로서 역할이 미미한 재산세와 종합토지세의 과세표준(과표) 현실화율을 매년 3%포인트씩 높여나가겠다는 것이다. 둘째, 시가(時價)를 과표에 반영하되 주택에 대한 과표 산정체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개편 배경=정부가 재산세 등 보유세 개편 방침을 처음 밝힌 것은 4월이다. 당시에는 지자체의 재원 마련보다는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한 부담을 늘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것이 취지였다.

이번 발표에서는 보유세를 올리는 김에 지방 재원 확충이라는 목적도 함께 이루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실제로 지방세 세수(稅收) 가운데 재산세와 종토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말 기준으로 8.2%에 불과하다. ‘잡음(雜音)’만 요란했지 취득세와 등록세의 재정기여도에도 크게 못 미친다.

지자체간의 격차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부과된 구별 재산세는 강남구가 39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서초구 224억원, 송파구는 149억원 등이었다. 이른바 ‘부자 동네’가 상위권을 휩쓸었다. 금천구는 43억원으로 강남구의 9분의 1수준이었다.

그런데도 개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상대적 부담은 강남권에 비해 강북권이 높은 편이다.

현행 재산세 과표가 시가보다는 건물면적이나 건축경과연수 등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시가가 5억원이 넘는 강남권 재건축아파트가 비슷한 가격의 강북권 아파트보다 재산세는 10분의 1수준에 불과한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

▽개편 방향과 문제점=정부가 현재까지 확정한 방침은 현재 30%대인 과표 현실화율을 매년 3%포인트씩 올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5년 뒤 과표가 60% 가까이 올라 세금부담이 3∼5배씩 늘어나는 아파트가 속출하게 된다.

특히 현행 재산세 과표체계의 문제점 때문에 값이 싼 아파트의 세금인상률이 비싼 아파트의 인상률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과표 구간과 세율을 조정하고 누진세를 도입해 고가(高價)주택 보유자나 부동산 과다보유자를 대상으로 세금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현실적으로 과표 결정권을 가진 지자체가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과표를 올리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결정권을 중앙정부가 가져오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그러나 보유과세의 모순은 수십년간 쌓여온 것이어서 이를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낼지는 의문이다.

또 세금 부담을 한꺼번에 급격히 늘리는 것은 어떤 경우에든 바람직하지 않은 데다 지방세인 재산세와 종토세에 대해 중앙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일부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금융소득종합과세 확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제시한 방향대로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가 개편될 경우 현재 4000만원인 과세 기준 금액이 대폭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과세 기준 금액을 1000만∼1500만원으로 낮춰 조세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기준으로 3만여명 수준이었던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도 상당히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부부합산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가 위헌(違憲) 판결을 받은 데다 경기침체로 ‘조세 저항’이 클 것으로 보여 제도 도입 과정에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내용 및 도입 배경=금융소득종합과세란 연간 금융소득을 합산해 400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은 다른 종합소득과 합해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제도. 금융실명제를 완결하는 후속조치로 1994년 세법(稅法) 개정에 따라 1996년분 소득부터 적용됐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본인과 배우자의 연간 금융소득을 합산해 적용했지만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현재는 개인별로 과세기준 금액을 적용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를 개편하려는 목적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원칙을 확립시키기 위해서다.

특히 지난해 8월 부부합산 과세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개인당 4000만원으로 과세 기준이 바뀐 것이 이번 방침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과세 기준 금액이 사실상 2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높아져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오히려 경감됐기때문.

현재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금액을 얼마까지 낮출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없나=제도 개편에 가장 큰 걸림돌은 조세 저항이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국민에게 오히려 세금 부담을 늘리는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

물론 금융소득이 적은 중산층이나 서민들에게는 세율이 낮아지는 부수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퇴직 후 금융기관에 돈을 예치해 그 이자로 생활하는 노년층은 소득 수준에 따른 세제(稅制) 혜택을 못 받는 맹점이 있다.

금융기관에 예치된 자금이 빠져나가는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다. 과세대상 기준 금액 강화로 금융소득에 대한 세금이 높아지면 생산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금융기관 예금이나 주식투자 자금이 부동산 시장 등으로 몰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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