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北 제2의 核공장보유']北核 대화 움직임에 잇단 ‘암초’

  • 입력 2003년 7월 20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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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의 해결방법을 놓고 ‘한반도 위기설’과 ‘대화를 통한 극적 타결 가능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뉴욕 타임스가 20일 북한의 제2핵시설 보유설을 보도한 것은 복잡한 북핵 국면을 더 복잡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 보도가 사실일 경우 미국은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개발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베일 속에 가려진 핵개발 실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핵 폐기를 위한 협상을 벌이기도, 군사력을 동원해 이를 제거하기도 모두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94년 제네바합의로 동결시킨 영변 핵시설 외에 국제사회가 모르고 있던 핵시설을 실제로 가동하고 있다면 이는 북한이 결코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 실태와 의도에 관한 국제사회의 정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개발(영변 시설) 외에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을 시인했으나 미국은 그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개발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8일 영변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을 완료했다고 미국에 통보했지만 미국은 이를 확인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 등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북한의 재처리 주장을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주로 미측 정보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타임스의 보도대로 미국이 영변 이외의 산악지대에서 크립톤85를 검출한 것이 사실일 경우 이는 북한의 재처리가 미국이 전혀 감지하지 못한 가운데 이뤄졌음을 뜻한다. 군사위성을 통해 영변 등 북한의 핵개발 의혹 지역을 24시간 샅샅이 감시해 온 미국으로선 당혹스러운 사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대화를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가 모르는 핵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94년 북핵 위기 때 영변 핵시설에 대해 검토했던 ‘정밀한 국부공격(surgical strike)’을 다시 고려하기도 어렵다. 만약 제2의 핵시설이 있다면 이미 드러난 영변을 폭격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파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한 당국자는 “NYT의 보도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며 “이 같은 보도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화 국면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사태는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현재 중국이 중재자로 나서 성사시키려는 ‘북-미-중 3자회담 후 한국 일본이 참여하는 5자회담’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문제를 푸는 방식은 더 까다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회담이 속개되더라도 미국은 4월 베이징회담에서 북한이 주장한 핵무기 보유의 진상과 함께 제2핵시설 문제를 먼저 따져야 할 실정이므로 협상이 쉽게 진척되기는 어렵다. 이래저래 북핵 국면은 위태롭기만 하다.


한기흥기자 eligius@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美강경파 '계산된 플레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극비 정보 사항이나 검토 단계의 정책들을 최근 잇따라 보도해온 뉴욕 타임스가 20일 또다시 북한이 제2의 비밀 핵시설을 갖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 긴장이 고조돼온 북핵 위기가 중국의 중재로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보도가 나옴으로써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핵 관련 뉴욕 타임스 보도들은 실제 정책보다 한발 앞서거나 행정부 내 대북 강경파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민감한 내부 정보를 다룬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뉴욕 타임스가 지난해 12월 29일 보도한 ‘맞춤형 봉쇄정책(tailored containment)’과 7월 1일 보도한 북한 고폭 실험 장소 발견 등을 들 수 있다.

맞춤형 봉쇄정책은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를 위해 무기 수출 선박의 공해상 나포 등 대북 경제 제재를 내용으로 한 것으로 현재 미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고폭 실험 장소 발견 보도도 사실로 확인돼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미 행정부는 확인이 어려운 정보 소스들을 인용한 뉴욕 타임스 보도에 대해 일단은 부인하거나 확인을 거부하지만 나중에 사실로 밝혀지거나 실제로 정책으로 실현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미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온건파들이 주도하고 있는 대화 위주의 대북정책을 견제하거나 여론을 떠보기 위해 영향력이 큰 뉴욕 타임스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국제문제 보도에 있어서 월등한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뉴욕 타임스의 취재력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일 뿐 정부의 여론조작에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평가는 부당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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