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오락가락 ‘黨政분리 원칙’

  • 입력 2003년 7월 13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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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가 굿모닝시티로부터 4억20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고 대선 때 ‘기업자금 200억원’을 모금했다는 메가톤급 폭로를 한 뒤에도 청와대측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대선자금 공개를 요구하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측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번 일로 대선자금을 해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상투적인 정치공세로 몰아붙이고 있다.

청와대는 해명을 거부하면서 우선 당정(黨政)이 분리된 만큼 청와대가 당 내부 사정이나 정 대표의 거취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또 대선자금은 대선 당시 살림을 맡았던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이 제일 잘 알고 있으며 청와대에는 당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심지어 10일 노 대통령이 중국에서 귀국한 직후 청와대에서 가진 핵심 참모들과의 만찬회동 직후 정 대표와 독대했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가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당정 분리’를 앞세워 당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청와대의 태도는 아무래도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자의적으로 말을 바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와대측은 18일부터 시작하는 노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방송을 추진할 때만 해도 “대통령은 정치인이자 민주당 당원이므로 주례연설에서 정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주례방송이 정치적인 논란에 휩쓸릴지 모른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책임정치를 구현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대통령의 정치 문제 언급은 당연한 것”이라며 민주당과 대통령의 관계를 ‘책임정치’라는 말로 연결지었다.

노 대통령은 5월 1일 TV토론에서 신당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당정분리를 하겠다. 대통령이 당을 지배하는 관계를 탈피하겠다는 공약을 했기 때문에 당 돌아가는 사정에 ‘감놔라 배놔라’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켜보면서 의사표명을 할 때가 되면 당 중진의 한 사람으로서 언젠가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취임 후 민주당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신당 문제를 언급하면서 “나도 저명한 당원”이라며 당의 일에 무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일은 다른 것도 아닌, 지난해 대선 때 ‘깨끗한 정치’를 모토로 내걸고 대선자금의 상당 부분을 ‘희망 돼지’ 모금으로 충당했다고 자랑해 온 노 대통령측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안길 수도 있는 사안이다. 청와대와 노 대통령이 이런 점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면 ‘저명한 당원’의 입장에서라도 세간의 의혹에 성의 있는 해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최영해 정치부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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