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발언…法질서 혼란 위험수위 인식

  • 입력 2003년 5월 2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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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5·18행사추진위원회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대통령직의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연합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5·18행사추진위원회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대통령직의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연합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18행사추진위원회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발언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에 최근 사회 전반의 집단적인 행동에 대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심각한 위기의식이 그대로 배어있는 만큼 앞으로 국정운영 방향이 바뀔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 발언 내용=이날 회동은 5·18행사추진위 간부들의 요청을 청와대가 받아들여 성사된 것. 5·18기념재단 이사장인 강신석 목사와 정수만 유족회장 등 간부 5명과 노 대통령,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참석했다.

강 목사는 대통령을 만나자마자 “지난번 기념식에서 불미하고 예의에 어긋나고 누를 끼쳐 죄송하다”며 “아무래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 찾아왔다”고 사죄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별 말씀을…”이라고 했고 강 목사가 죄송하다는 뜻을 거듭 밝히자 “의도한 일도 아니고 있을 수 있는 일이다”며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강 목사는 “사실 의도된 것은 없었고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타나 마음이 아프다. 언짢은 것 있으면 푸시고…”라며 시위 참가 학생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노 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지적한 뒤 “어른들도 젊은 사람들이 잘못하면 나무랄 줄 알아야 한다”고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당시 현장 상황까지 자세히 언급하면서 학생들의 시위에 인내심 있게 대처했던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처음 진입할 때 피켓시위가 있다는 보고가 있어 내버려두라고 했다”면서 “혹시 길이 막힐지 모른다고 해서 무리하게 뚫지 말고 우리가 돌아가자고 했다. 광주 5·18 기념식에서 제압하고 길 뚫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아 그랬는데 생각 밖으로 일이 전개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격한 어조로 “이러다 대통령을 제대로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두 차례나 말했다.

▽대통령 발언 배경=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최근 상황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해석이다.

방미 때 미국을 극찬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사람이 변했다”며 연일 공세를 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 파업이 끝나고 바로 전교조가 집단행동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하고 나서자 최근 부쩍 “피곤하다”는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

아무튼 대통령의 언급으로 앞으로 화물연대 파업 같은 국가적인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대화와 타협에 집착하기보다 법과 질서, 원칙에 따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발행된 청와대소식지 ‘청와대 브리핑’도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노사갈등을 줄이고 노동자 구속을 최소화하는 것이지만 ‘관행’이 정책되기 전까지 불법 파업에 공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특히 △노사갈등에서 심각한 폭력과 파괴가 있거나 △공익에 대해 현저한 침해가 있을 경우 △국민 경제에 회복 불가능한 심대한 타격이 예상될 경우 분명하고 단호하게 공권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해 새 정부의 사회갈등 해결 방법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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