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정상회담]"北核 원칙만 확인…구체해법 불분명"

  • 입력 2003년 5월 1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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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문가 반응▼

▨홍순영(전 외교통상부·전 통일부장관)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큰 틀에서 북한 핵문제를 조명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여론을 고려해 북한에 대한 인식과 대책을 검토하고, 국제사회의 기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양국 정부가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관계에서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큰 틀에서 공통된 인식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인 회담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핵 카드를 활용하려는 북한과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미국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입장 차이로 인해 현재의 대치 국면이 오래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국과의 협의 및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간 동반자적 협력의 새로운 시작이며, 협력의 기초를 마련한 자리로서 앞으로 본격적인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공동성명에도 언급됐지만 중국의 입장과 인식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부여해 협의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 포기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메시지를 북한에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이 한미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나와야 한다.

한미동맹 문제와 주한미군 2사단의 재배치 문제는 모두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사단 문제는 흥정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장기적 재배치 전략을 염두에 두고 협의해 나갈 과제다.

▨허문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한미 정상회담의 총론은 긍정적이지만 각론에 있어서 신중하게 풀 문제가 많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부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세운 구도는 북한과 문제를 먼저 풀고, 미국과 협의한 뒤 국민화합에 나선다는 것으로 비쳤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화합을 통해 한미관계를 설정한 뒤 남북관계를 푸는 방식으로 간 것이다.

대등한 한미관계를 강조하던 노 대통령이 국민 여론을 반영해 정책을 만들어냈고, 이를 미국도 존중해주었다는 것은 앞으로의 한미관계에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문제는 북핵 문제가 잘 안 풀릴 경우다. 정부는 그동안 북핵 문제와 남북교류협력을 병행하겠다고 했지만, 공동성명에서는 이 문제가 연계될 것임을 예고했다. 따라서 당장 19일부터 시작될 5차 경협추진위원회에서 어떻게 풀어갈지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추가조치 문제가 자칫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우리 정부가 북한에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도 그동안 미 정부가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핵문제에 국한된 모습의 성명을 만든 의미를 잘 살펴야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목표가 동북아에서의 질서유지이지 북한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는 점을 밝힌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도 핵은 협상용으로 국한시켜야지 혹시라도 개발로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북한을 몰아붙이는 것이라고 보지 말고 남북관계에 호응해 나오는 것이 북한이 사는 길임을 인식해야 한다.

▼美 전문가 반응▼

▨케네스 퀴노네스(미 인터내셔널센터 한반도 프로그램 이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첫 방미는 세 가지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두 나라의 동맹관계가 확고하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함께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사람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냈다. 노 대통령은 미국 경제계에 한국은 투자하기에 좋은 나라라는 점을 장담했다.

그러나 ‘미소 외교(Smile Diplo-macy)’는 두 가지 근본적인 의견 차이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해 ‘통합 계획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를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제거를 원한다’고 합의했다. 문제는 두 사람이 공동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에서의 반미감정과 남북관계라는 두 가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미국을 비판하는 한국인들은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자신의 희망사항들을 공식적으로 주장하지 못한 점을 비판할 수 있다. 북한도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을 미국의 정책에 종속시키겠다는 자발적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불평할 것이다.

▨피터 벡(미 한국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관계를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는 중요한 일보를 내디뎠다고 할 수 있지만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2001년 3월 재난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실패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다시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부드럽게 끝났다.

그러나 두 정상은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서 정반대의 접근 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공동성명에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 구체적 조치가 별로 담겨 있지 않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에 검토될 것이라고 한 ‘추가적 조치’가 대북 경제제재나 봉쇄를 준비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용산 미군 사령부를 옮기면 과연 양국 관계의 마찰 요인이 없어지는 것일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뉴욕과 워싱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약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미국과 더욱 긴밀한 안보 및 경제 관계를 발전시킬 것을 약속했다.

백악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정상회담이 그렇지만 이번에도 웃음과 악수는 길고 내용은 부족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선 과정에서부터 비롯된 불신과 오해를 극복하기에는 두 정상의 만남은 너무 짧았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별명을 붙여줄 때 개인적인 관계에 진정한 진전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中 전문가 반응▼

▨한전서(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양국은 북한 핵문제 해법에 있어 서로 절충하는 길을 택했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상황 악화시 추가 조치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핵사태 해결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양국간에 이견과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화가 핵위기 해결을 위한 최우선 수단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한 것은 긍정적이다.

이번 회담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적지 않겠지만 내부 고민도 클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결연한 의지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표면상 반발 수위를 높이겠지만 사태 악화가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를 것으로 본다.

▼日 전문가 반응▼

▨히라이와 온지(일본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한국으로서는 미국에 많이 양보했다는 느낌을 가질지 모르지만 회담 결과는 전체적으로 잘 됐다. 오히려 미국과의 신뢰 관계를 회복함에 따라 앞으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한 핵 문제는 이제 미국 단독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참여를 통한 해결로 가닥이 잡히게 됐다.

이번 회담의 또 다른 성과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미국보다 북한에 가까울 것’이라는 미국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합리적이며 대화가 가능한 파트너’라는 인상을 미국 정부에 줬다는 점이다.

북한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북한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남북관계가 갑자기 단절되는 사태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 전문가 반응▼

▨알렉산드르 보론초프(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과장·전 북한주재 외교관)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기대했던 수준 정도의 결과를 얻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미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양국간의 오래된 동맹관계를 강조하고 주요 현안에 대해 이견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또 주목할 것은 주한미군을 이동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낸 점이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의 이동배치가 현실화되면 미국이 군사행동을 감행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주한미군 현 위치 고수는 ‘휴전선 일대의 안정’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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