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미-일 주요언론의 분석

  • 입력 2003년 5월 15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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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15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두 정상이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으나, 핵심 해법에 대한 입장 차이를 해소하지는 못했다고 논평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날 "한미 정상은 북한을 경제제재나 군사 공격 위협으로 고립시켜 갈 것인지를 놓고 빚어져온 심각한 입장 차이를 모호한 외교적 성명을 통해 비껴갔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북한에 대한 압력을 어떻게 증가시킬지에 대해 의도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썼다"며 "이같은 모호한 표현들은 북핵 문제 접근 방식에 대한 두 나라간 입장 차이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또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 안보보좌관과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대북 군사력 사용을 선택수단에서 배제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고 말했음을 지적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전략을 놓고 한미간에 차이가 있었음이 매우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조지 W 부시대통령이 이날 공동회견에서 북한에 대해 핵포기를 공개 요구하거나 김정일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과거 외국 국가 원수 방문시 이라크 사담후세인 대통령에 대해 사용했던 어휘들과 극명히 대조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또 "정상회담전 노무현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대북 경제제재나 미사일 마약 수출 차단 등을 논의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강조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는 문제는 직접적으로 논의되지 않았으며, 노무현대통령이 그같은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미 행정부내에서는 북한 선박 해상 나포 계획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정상회담에서는 대북 제재 문제에 관해서는 논의조차 없었다고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시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상당한 진전'을 선언했지만 군사공격을 선택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또 두 정상이 주한미군의 재조정을 위한 계획 마련에 합의한 것을 주목하면서 "이같은 합의는 북핵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는 휴전선 바로 밑의 미군을 포함해 한국내 기지들을 폐쇄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노대통령은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확약받았지만 얼마나 많은 숫자가 주둔할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정상회담후 한 고위관리는 "주한미군의 최종 주둔 규모에 대해 결론이 내려진 것은 없다"고 전제한뒤 "하지만 숫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감군해도 주한미군의 군사능력은 줄어들지 않는다"며 "그러나 미군기지들을 여러 곳에 분산해 주둔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해 미군기지 통폐합을 시사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이 신문은 또 "노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 대상에서 제외하고 주한미군 재조정을 유보해줄 것을 희망하면서 미국에 왔지만 미국은 두 가지 모두 보장해주지 않았다"며 "하지만 미국은 어떤 경우에든 한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임을 확약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또 "두 정상은 적어도 당분간은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 검토 여부에 대한 이견을 완화시켰다"며 "미 행정부는 군사공격을 선택대상에서 배제하지 않을 것이지만, 두 정상은 평화적 해결을 자신한다고 표현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부시대통령이 예상외로 평화적 해결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피력했으며, 한 고위관리는 기자들에게 처음으로 "지난달 베이징 회담이 큰 성공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미국 언론에서 큰 이슈로 다뤄지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사우디아라비아 테러 사건이 터져 이것이 주요 기사로 다뤄진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다.

노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한 11일 워싱턴 포스트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비판하는 특집 기사를 게재했고, 12일자에도 이미 약 한달 전에 발생한 호주에서의 북한 화물선 마약 거래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노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13일자에 사진도 없이 A18면 구석에 2단 기사로 처리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13일의 미 상공회의소 및 한미 재계회의 오찬 연설을 A25면 하단에 게재했고 뉴욕 타임스는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워싱턴 타임스만 노 대통령 인터뷰와 정상회담 기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방송의 경우도 CNN만 한미정상의 백악관 공동성명 발표를 5분 동안 생중계했다. 이 시간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주요 방송의 저녁 뉴스를 시청하는 시간이었다. NBC는 저녁 뉴스 시간 마지막 뉴스로 30초 동안 보도했다.

◇일본= 일본 정부는 15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 등을 확인한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북한은 한미정상회담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노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재확인함으로써 이번 미국 방문의 큰 목적은 달성했다"며 "다만 '평화적 해결'의 내용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의 입장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며, 부시 정권은 핵과 미사일 개발의 향방에 따라서는 경제제재 등 대북 압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NHK 방송은 "부시 대통령이 평화적 해결 입장을 표명했지만, 군사적인 조치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한국과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이날 석간 1면에 한미 정상의 사진과 함께 정상회담 내용을 실었으며, 별도의 면에는 해설기사를 곁들이는 등 큰 관심을 나타냈다.

아사히 신문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한국측과, 경제제재 등 압력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측의 입장차이는 그대로 남았다"고 논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측) 대접은 냉담'이라는 제목의 1면 상자기사에서 "정상회담 자체는 35분 정도였을 뿐"이라며 "내주 미국을 방문하는 고이즈미총리가 텍사스주의 대통령 저택에 가는 것과 비교할 때 백악관은 한국측에 냉담했다. (노무현 정권이) 미국의 완전한 신뢰를 얻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장치웨(章啓月)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공동선언은 중국의 입장과도 일치한다고 말하고, 중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장 대변인은 이어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베이징(北京) 회담이 언제 재개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피한 채 "중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 모든 관련 당사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해 북한과 접촉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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