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식 前현대상선사장 "청와대 요구로 계좌 빌려줬다"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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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이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두하고 있다. -변영욱기자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이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두하고 있다. -변영욱기자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은 9일 2000년 6월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었던 김충식(金忠植)씨를 소환, 송금 과정에서 청와대나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했다.

김 전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출석, 당시 대출 경위를 묻는 기자들에게 “모든 것은 조사받는 과정에서 성실히 대답하겠다”고 짧게 답한 뒤 조사실로 들어갔다.

김 전 사장은 “청와대 관계자 등이 북한에 송금할 돈이라며 현대상선측 계좌를 빌려달라고 요구해 어쩔 수 없었다”면서 “현대상선은 이번 사건에 관여한 바가 없으며 국정원이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고”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당시 대표이사로서 대출에 반대했지만 정몽헌(鄭夢憲) 회장의 지시로 대출이 이뤄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김 전 사장을 상대로 ‘북 송금’ 자금 대출이 누구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는지와 2000년 6월 4000억원 대출 당시 대출약정서에 김 전 사장의 서명이 누락된 경위 등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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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은 또 김 전 사장이 2000년 8월 엄낙용(嚴洛鎔) 당시 산업은행 총재의 4000억원 대출금 상환요청에 대해 “우리가 사용한 돈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갚아야 한다”고 언급했다는 엄 전 총재의 주장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전 사장에게 물어볼 것이 많다”고 말한 뒤 사건 관련자들과의 대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답해 경우에 따라 엄 전 총재나 현대상선 임원들을 다시 소환, 대질신문을 벌일 방침임을 시사했다.

특검팀은 김 전 사장에 이어 다음주부터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김재수(金在洙) 현대그룹 당시 구조조정본부장,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 등 당시 대북 사업을 주도한 현대 핵심 경영진에 대한 소환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김 전 사장은 2000년 10월 현대상선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지난해 9월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이 불거지자 신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떠났다가 7일 귀국했다.

한편 특검팀은 또 국정원에 대북송금의혹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차원의 진상조사 또는 내부 감찰이 있었는지 여부와 관련 자료가 있을 경우 이를 특검팀으로 보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7일 보냈다고 이날 밝혔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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