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웬 위원회가 그리 많은지" 청와대에 볼멘소리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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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새로 생긴 위원회가 무엇을 더 구체적으로 재검토해, 어떻게 법안에 반영하겠다는 것인지 우리도 모르겠습니다.”(재정경제부 당국자 A씨)

“청와대 안에서도 유기적인 협조가 안 되는지 정책실, 상황실, 무슨 무슨 위원회 등 대여섯 곳에서 똑같은 자료를 요구합니다. 사람은 많이 빼갔는데 어디가 우리 채널인지도 모르겠고 일이 생기면 어디와 상의해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건설교통부 과장 B씨)

최근 대통령 직속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위원장 배순훈·裵洵勳)는 정부가 추진중인 경제자유구역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격론을 거쳐 지난해 11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까지 통과한 법안을 위원회가 처음부터 다시 손보겠다는 발언에 정부당국 실무자들은 몹시 당혹해하고 있다.

이 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자마자 이 같은 방침을 밝힌 것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의중을 상당히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올 2월 국내·외 기업간 차별성, 외국인 학교 및 의료기관 설립의 실효성과 관련, 경제자유구역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만 혼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기획예산처의 배모 국장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예산처 공보관에 내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뒤 사무실을 옮기고 출입기자들에게 “앞으로 잘해보자”며 ‘부임인사’까지 했으나 갑자기 청와대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위원회에 차출당한 것. 예산처의 한 고위간부는 “우리도 꼭 필요한 인력이지만 청와대가 요청하는 데 주지 않을 수 있나”라며 “당사자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예산처는 또 대통령비서실에 국·과장급 5명이 전출된 데다 새 정부 들어 새로 만들어진 각종 위원회에 국장 2명, 과장 3명이 파견 나갔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는 인력 차출이 더 심각하다.

경제정책국의 보직과장 3명을 포함해 핵심 과장 및 서기관 등 10여명이 청와대의 각종 위원회와 태스크포스에 무더기로 빠져나갔으나 요즘도 추가 인원파견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신(新)행정수도 건설 등 기존의 업무 외에 새로운 일이 늘어난 건설교통부도 국·과장을 중심으로 11명이 최근 청와대나 산하 위원회로 발령났다.

건교부의 한 과장은 “파견인원이 모두 관련 분야에서 핵심 인물이어서 업무 공백이 불가피하다”며 “부처중심 행정이라고 했는데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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