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교수 임명, 상생포기선언인가

  • 입력 2003년 4월 3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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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실상 ‘임명 불가(不可)’ 판정을 받은 서동만 상지대 교수를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임명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서씨가 “친북(親北) 편향성이 강하고 정보업무 경험이 전무해 국정원의 정무직 공무원으로서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임명불가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북한을 잘 아는 것과 친북은 다르다”는 논리로 일축했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서씨의 이념성향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 대통령의 이번 인사는 ‘오기정치’의 산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회가 ‘부적절’ 평가를 내린 고영구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해 정국 대치상태를 초래한 데 이어 그동안 야당이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혀온 서씨를 국정원 기조실장에 잇따라 임명한 것은 한마디로 ‘당신들이 안 된다고 할수록 나는 하겠다’는 식의 독선과 오기의 결과가 아닌가.

노 대통령의 서씨 임명은 이제 국회 인사청문회의 근본 취지를 무시한 차원을 넘어 국회 및 야당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극단적 선택으로 비칠 수 있다. 당장 한나라당은 고 국정원장에 대한 사퇴권고결의안을 국회에 내고 장내외 규탄대회를 벌이기로 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상생정치는커녕 불신과 반목의 대결정치로 정국을 파행으로 몰아간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행여 ‘신당 드라이브’를 위한 정치적 복선이 개입됐다면 더욱 그러하다.

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국회 존중’ ‘야당과의 상생정치’를 강조해 왔다. 이는 과거 ‘제왕적 대통령 상(像)’에서 벗어나려는 긍정적인 노력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인사에서 보인 노 대통령의 모습은 그간의 행보를 의심케 한다. 국정원 개혁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상생정치로 정치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정인사만이 국정원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독선으로 집권 두달여 만에 상생정치의 싹을 자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기정치’로는 개혁도, 국민통합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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