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인사는 서씨의 이념성향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 대통령의 이번 인사는 ‘오기정치’의 산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회가 ‘부적절’ 평가를 내린 고영구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해 정국 대치상태를 초래한 데 이어 그동안 야당이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혀온 서씨를 국정원 기조실장에 잇따라 임명한 것은 한마디로 ‘당신들이 안 된다고 할수록 나는 하겠다’는 식의 독선과 오기의 결과가 아닌가.
노 대통령의 서씨 임명은 이제 국회 인사청문회의 근본 취지를 무시한 차원을 넘어 국회 및 야당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극단적 선택으로 비칠 수 있다. 당장 한나라당은 고 국정원장에 대한 사퇴권고결의안을 국회에 내고 장내외 규탄대회를 벌이기로 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상생정치는커녕 불신과 반목의 대결정치로 정국을 파행으로 몰아간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행여 ‘신당 드라이브’를 위한 정치적 복선이 개입됐다면 더욱 그러하다.
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국회 존중’ ‘야당과의 상생정치’를 강조해 왔다. 이는 과거 ‘제왕적 대통령 상(像)’에서 벗어나려는 긍정적인 노력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인사에서 보인 노 대통령의 모습은 그간의 행보를 의심케 한다. 국정원 개혁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상생정치로 정치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정인사만이 국정원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독선으로 집권 두달여 만에 상생정치의 싹을 자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기정치’로는 개혁도, 국민통합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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