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두환씨 국민을 또 모욕했다

  • 입력 2003년 4월 29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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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뇌물죄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재산명시 심리재판에서 29만1000원이 든 예금통장을 제출하고 “측근과 자녀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강변한 것은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고 국민을 우롱한 일이다.

씀씀이가 큰 것으로 소문난 전씨가 법정에 제출한 재산 내용은 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측근을 대동하고 지방 또는 해외여행을 하고 골프장 나들이를 하고 있으니 그는 아직도 정직성을 회복하지 못한 느낌이다. 상당한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 정도 호화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임에 비춰 그는 또 한번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도와주는 주변 인사들이 추징금을 안 내주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전씨는 “그들도 겨우 생활할 정도”라고 답변했다. 과연 그와 측근들이 5공 때 청렴하게 공직 생활을 수행해 돈을 모아놓지 않아 지금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인가. 재임 중 재벌들로부터 천문학적인 뇌물을 챙겨 측근들에게도 통 크게 선심을 쓴 사실이 수사와 재판을 통해 모두 밝혀졌는데 그 돈은 다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전씨가 이처럼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그가 참회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백담사에 다녀오고 일시 수감생활을 한 것으로 그가 저지른 인권유린 부정부패 헌법파괴를 속죄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로부터 혹심한 탄압을 받았던 사람들은 집권하자 동서 통합을 내세워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집권에 반대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그의 행태에 지하에서조차 분노할 것이다.

전씨는 군사반란과 뇌물수수죄로 유죄가 확정돼 법률에 의해 전직 국가원수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재산을 타인 이름으로 숨겨 놓은 명의신탁 행위가 없는지를 철저하게 따져 재임 중 부정하게 모은 돈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통령을 두었던 우리 국민 모두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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