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多者대화 언제 어떻게]北체제보장 방안이 최대 관건

  • 입력 2003년 4월 14일 18시 43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대화 수용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3일 이를 “매우 좋은 소식(very good news)”이라고 화답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다자대화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작될지가 최대 관심사로 등장했다. 한미 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다자대화의 틀 마련과 조속한 대화 시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자대화 어떤 형식으로 시작될까=다자대화의 형식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현재 논의 중인 다자대화의 형식은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강이 참여하는 ‘2+4’,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과 남북한 일본 호주 유럽연합(EU)이 참여하는 ‘P5+5’ 등으로 압축되고 있다. 관련국들이 대화 형식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겠지만 ‘2+4’나 ‘P5+5’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남북한이나 미국이 각각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다자대화의 틀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조정 과정에서의 진통도 예상된다. 북한이 주장해 온 북-미 양자대화를 다자대화 틀 안에서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문제와 더불어 다자대화가 단순히 북한 핵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북(對北) 지원까지도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이 요구해 온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북 체제안전 보장이 있어야 다자대화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의 체제안전을 확인해 주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2+4’ 형식의 6자회담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도 대화를 통해 북한 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우리 정부와 대체로 같은 인식이지만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 뒤 소요될 대북 지원 비용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사업 지원처럼 다자대화의 참여자가 많을수록 부담이 덜어진다는 차원에서 ‘P5+5’ 쪽에 관심을 보여 왔다.

반면 북한의 경우 비록 다자대화를 수용할 의사를 내비쳤지만 미국과의 실질적인 대화를 보장받은 다음에야 다자대화에 ‘성의’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12일 “우리는 대화의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양자대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 핵문제의 주요 당사자들의 입장에 차이가 있지만 남북한과 미국 모두 다자대화의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대화가 중요하다는 입장이어서 다자대화 움직임이 급진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다자대화에 참여할 나라들이 정해지면 북한에 대한 설명회와 예비회담을 거쳐 본회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97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한 4자회담 때도 이런 수순을 거쳤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 배경=미국은 일단 부시 대통령이 13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문제에 진전이 있다”고 평가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북한의 진의 파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선 미국은 이라크전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상태인 데다 이라크 재건 및 복구 문제에도 매달려야 하고, 시리아 이란 등 중동 국가들과의 문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행정부 내의 북한 문제에 대한 의견 조율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부 내에는 부시 대통령이 그동안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 대담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밝혀온 것과 관련, ‘미국의 요구’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다.

북한이 다자대화에 동의하는 것만으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온건파와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 동결을 포함한 양보 가능한 사항들에 동의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북한의 양보 사항에는 휴전선에 집중돼 있는 재래식 무기의 후방 배치와 인권문제까지 포함돼 있다.

게다가 딕 체니 부통령은 이번 기회에 94년 제네바합의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 ‘동결’이 아니라 ‘포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생각하는 다자대화는 사실상 미국이 모든 책임을 다시 떠안게 되는 형식상의 다자대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다자대화인 만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관련국들이 어떻게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는 틀을 마련할 것인지도 과제다.

그러나 미국도 아직은 다자대화 참여국이나 형식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부시 대통령이 “다자대화가 곧 결실(fruition)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은 조기에 다자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로서는 관련국들 사이에 협의가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다음달 1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대화 진전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NYT "北-美 군사충돌 대신 현상유지 택할수도"▼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접근법을 채택하기 어려울 것이며 북한도 현상유지를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3일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조엘 위트 전략국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을 인용, “미국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대북 접근법을 택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트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이라크 문제를 소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이어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준비하는 데 최소한 6개월이 소요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선거가 다가오고 있어 미국 행정부는 교착된 현상유지(deadlocked status quo)가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라크전쟁이 시작되면 미국의 주의가 여기에 집중된 틈을 타 영변 원자로 재가동과 핵연료 생산 등에 나서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자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밝혔다.

최근 북한을 다녀왔다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핵연료 재처리와 플루토늄 수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금지선’을 넘지 말라고 북한측에 조언했다”면서 “아직까지 북한은 괄목할 만한 자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불편하지만 생존 가능한 현상유지’를 택한 것은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와의 성과 있는 대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풀이했다.

한편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 최신호(21일자)는 미국이 개전 3주 만에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동북아 지역에 ‘바그다드 효과(Baghdad Effect)’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하기 전 미국은 북한 핵문제와 한국의 반미감정, 북핵 문제에 관한 중국의 방관 등으로 고전했으나 전쟁 승리를 계기로 이들 동북아 국가가 대미 접근법을 재고하기 시작했다는 것.

특히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종전의 ‘벼랑 끝 전술’에서 실용적 접근법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 주간지는 분석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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