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풍의혹 李哲씨 ‘보은 인사’인가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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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지난주 공기업을 비롯한 정부산하기관 임원 인사시스템을 대폭 쇄신하겠다고 밝혔다. 추천 토론 검증 등 다단계 절차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선발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 이철 전 의원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자격 요건을 얼마나 철저히 검증했는지 궁금하다. 이 전 의원은 이른바 ‘세풍’사건과 관련해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의혹이 전혀 해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정부터 하는 것은 순서가 아니다. ‘부패 비리혐의나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은 일절 공직에 임명하지 않겠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당시 약속과도 어긋나는 일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은 ‘장·차관 인선 검증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와 경력, 평판을 가진 상류층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낙마했다’고 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비리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사를 발탁했으니 그런 모순이 없다. 어느 정권보다 깨끗한 인사를 다짐했던 새 정부이기에 국민은 이번 일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더욱이 이번 인사는 대선 논공행상이라는 비판을 비켜가기 어렵다. 이 전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정몽준 후보 캠프에 몸담았다가 막판에 노무현 후보쪽에 도움을 준 사람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대선에서 빚을 졌다는 생각에서 ‘보은(報恩)인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부채감은 털고 가는 게 국가지도자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노 대통령은 얼마 전 ‘대통령이 임명하면 무조건 낙하산인사라고 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는데 이번 일이 정부산하단체 낙하산인사의 신호탄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역대정권의 낙하산인사가 초래한 폐해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다시 그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부산하기관의 경쟁력 강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공공부문 개혁 작업에도 영(令)이 설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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