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평검사 토론회/검사-시민 반응]盧, 얼굴 붉히기도

  • 입력 2003년 3월 9일 2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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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께서 바로 서야 검찰도 바로 섭니다.”

사상 처음으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공개 토론회가 열린 9일 검사 대표들이 대통령에게 전달한 말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토론회가 열린 이날 오후 휴일을 맞아 국민들은 전국에서 대통령과 검사들이 검찰 인사를 놓고 팽팽한 논리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TV 생중계로 지켜봤다.

검찰 주변에서는 토론회에 이어 이날 밤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앞으로 검찰 인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뒤숭숭한 모습이었다.

○…노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파격적인 토론회에 이어 이날 저녁 김각영 검찰총장의 사의 표명 소식까지 전해지자 검찰은 온통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총장의 사퇴로 인사 폭이 더욱 커질 것 같다”며 “앞으로 어떤 ‘태풍’이 몰아칠지 예측이 안 된다”고 말했다. 대검의 간부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평검사들은 대통령 친형의 인사청탁 의혹설 등 민감한 사안까지 거론하며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노 대통령이 흥분한 태도로 대응하자 순간순간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첫 발언자인 서울지검 허상구(許相九) 검사가 노 대통령을 ‘토론의 달인’이라고 표현하자 노 대통령은 “내가 잔재주로 검사들을 제압하려 한다고 비하하는 것 같아 모욕감을 느낀다”고 불쾌감을 보였다.

또 수원지검 김영종(金暎鐘) 검사가 당선 전에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성 전화를 한 일을 거론하자 노 대통령은 얼굴을 붉히며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냐”며 “수사 검사를 입회시켜 토론회를 할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토론회를 지켜본 검사들은 대부분 실질적 성과는 없었지만 국민에게 검찰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한 데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었다.

토론회 참석 검사들은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으로 돌아와 기자 간담회를 갖고 “평검사들의 입장과 심정을 국민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점에 대체로 만족한다”면서도 “노 대통령이 인사를 강행하려는 뜻을 보인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검사는 “대통령과 장관이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굳힌 상태에서 토론회에 나와 성과가 없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일부 간부 검사들은 “토론회에 대한 역작용으로 되레 검찰의 권한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발언 수위가 높을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대통령이 처음 격의 없는 공개 토론회에 나선 데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일방적 주장만 오간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행사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말해 토론이 제대로 안 됐다”며 “정치적 중립을 위해 검찰이 청와대의 입김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문제가 언급되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검사들의 주장은 검사의 권한만 반복해 설득력이 떨어졌다”며 “정치적 독립성뿐만 아니라 기소독점주의나 검찰에 대한 견제책이 미비해 생기는 문제에 대해 검사들이 자성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화여대 김석준(金錫俊·행정학) 교수는 “노 대통령이 검찰 상층부에 대한 불신을 수 차례 강조했다”며 “다른 정부기관도 코드가 맞는 집단과 맞지 않는 집단을 분리해 다스리겠다는 단편을 보여준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검사들은 이날 토론회장 자리배치와 관련해 “당초 원탁회의 형식으로 대통령과 검사 10명이 자유토론을 하기로 했는데 청와대가 갑자기 대통령의 자리를 별도로 마련하고 검사들은 책상 없이 일렬로 배치했다”며 한때 토론회를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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