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당선자 "청탁땐 패가망신-세무조사" 발언 파장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8시 49분


노무현 당선자의 ‘청탁하면 패가망신’ 발언은 사회 각 부문에 즉각적인 파장을 던졌다. 연고주의와 청탁문화 배격이라는 발언 취지에는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한 대목에 대해서는 부적절하거나 초법적 발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27일 경제부처와 재계 관계자들은 “인사 청탁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지만 대통령당선자가 이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 세무조사까지 동원하겠다는 것은 법과 절차를 무시한 제왕적 발상”이라며 비판했다.

국세청 관계자들은 특히 ‘공평 과세 실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세무조사를 해야 하며 다른 목적 등을 위하여 조사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국세기본법 81조 3항까지 인용하며 우려를 나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종익(申鍾益) 규제조사본부장은 “권력자 주변에서 행해지는 청탁 관행을 막으려면 인허가 제도나 정책자금 지원 절차 등 시스템을 투명하게 해야지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식의 협박은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인 하창우(河昌佑) 변호사는 그러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인사 청탁과 이권에 개입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이며, 노 당선자가 앞으로 지연과 혈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재계의 우려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吳昌翼) 사무국장도 “그동안의 정권들이 여러 가지 업적에도 불구하고 지탄을 받아온 것은 친인척 관리와 인사 실패 때문이었던 만큼 시의적절한 지적”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또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민주당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인사 청탁을 받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얘기인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대한변협의 한 변호사는 “실패한 정권이 악용한 특별세무조사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향으로도 비칠 수 있는 대목”이라며 우려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정권인수위원회가 구성된 만큼 대통령당선자의 혁신적인 발상도 중요하지만 부적절하고 초법적인 언급이 나오지 말아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盧 당선자 '패가망신' 발언▼

“앞으로 끊임없는 인사 청탁이 난무할 것으로 본다. 97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선 후 당시 힘이 없던 나에게도 (사람들이) 청탁해왔다. 당직자 여러분은 앞으로 (청탁받으면) ‘당신 그러다 걸리면 밑져야 본전이 아니고 반드시 손해볼 것이다’고 분명히 경고해 달라. 이번엔 우리가 그렇게 해보자. 걸리면 패가망신, 그렇게 경고해달라. 나 혼자로는 안된다. 여러분들이 해달라. 지금까지 청탁 문화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사 청탁 잘못했다 걸리면 엄청 불이익을 받도록 하고, 다른 청탁에 대해서는 특별조사제도를 만들겠다. 아무리 잘한 조직이나 기업이더라도 (청탁하면) 조세 문제를 비롯해서 모든 점에 대해 철저히 특별 조사 실시해서 아무 흠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도록 하겠다. 내 친인척들에게 지금 전화 엄청 온다고 한다. 여기 줄 대다 걸리면 철저히 조사하겠다. 줄 대면 불이익 입을 수밖에 없게 하겠다.연고, 정실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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