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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18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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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전례들은 일단 핵을 보유하게 됐을 경우 이러한 노력이 극히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가공할 위력을 감안할 때 보유에 성공할 경우 이를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
98년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경쟁적으로 핵실험을 단행하자 미국과 주요 선진국은 양국에 대해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관을 통한 차관을 일절 중단키로 했다. 제재조치에는 △신규 군사장비 판매 및 기존 구매장비 인도 중단 △미국 정부의 신규 신용 제공 중단 △미국 은행들의 해당국 진출 금지 △인도적 원조를 제외한 미국의 모든 원조 중단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제재조치는 불과 2년도 안돼 대부분 해제됐다. 이유는 양국이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에 서명할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 파키스탄은 오히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알 카에다 소탕에 협력해 20억달러의 원조를 미국으로 받는 주요 수혜국이 됐다.
국제사회는 핵확산금지조약(NPT)으로 핵무기개발을 억제하다가 일단 핵무기를 보유하면 CTBT로 더 이상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그러나 CTBT는 공화당이 다수당이었던 미국 상원이 99년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실효성이 크게 약화됐다.
현재 핵무기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대 핵강국 외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핵무기 보유 추정국, 일본은 핵무기 기술보유국으로 분류된다. 이란과 이라크는 핵무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단 ‘핵 버스(nuclear bus)’에 탑승해 버스가 떠나면 그만일 수밖에 없는 국제적 현실 때문에 핵무기 개발 경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미국과 기존 핵보유국은 다른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을 차단하기 위해 외교적 군사적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미국의 정찰위성이 지나가는 시간을 피해 핵실험을 준비했다.
물론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폐기한 전례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70년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적대적인 흑인정권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이어서 핵무장을 결정, 89년까지 6개의 원폭을 제조했다. 그러나 93년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유엔의 압력과 국제 여론에 못 이겨 핵무기 관련 문서를 파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6개의 원폭을 해체했다고 발표했다. 남아공은 비핵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이러한 사후제재의 어려움 때문에 북한의 경우도 핵무기 개발 이전 단계에서 주저앉혀야 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